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화제몰이 중인 드라마 ‘더 글로리’에 나온 대사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악인들 중 한 명인 ‘박연진’은 과거 학교폭력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연진은 자신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인 주인공 ‘문동은’이 그녀의 과거 행위에 대한 복수를 시도하자 이를 비웃으며 자신의 행위를 적극 옹호한다. 논리는 ‘돈을 받고 딸의 학폭 피해 사실을 덮을 만큼 나쁜 네 엄마도 있는데 그런 엄마는 놔두고 내게 왜 이러느냐’였다.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주인공의 아픈 가족사를 방패로 사용하는 거다. 여기에 더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겐 잔인한 현실을 이유로 들어 주인공이 더 이상 반론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연진의 태도를 일컬어 ‘왓어바웃이즘(Whataboutism)’이라고 한다. 이는 자신에게 비판이 가해지거나 문제 제기가 있을 때 아무 연관성 없는 다른 주제나 이전의 사건을 꺼내 문제행동을 감추거나 반박을 시도하는, 일종의 회피 전략이다. 언뜻 생각하면 연진 같은 파렴치한 악인들이나 이렇게 말하겠지 싶지만, 생각보다 일상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대응방식이다. 핸드폰 사용을 두고 아빠가 아들에게 ‘왜 식탁에서 폰을 사용하느냐’ 야단칠 때 아들이 ‘아빠도 어제저녁에 폰을 하지 않았느냐’ 되받아쳤다면 나도 모르게 왓어바웃이즘을 사용한 거다.
정치·기후변화 논쟁에 만연한 ‘그러는 너는’ 전략
‘그러는 너는’ 전략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사용되는 분야로 정치를 꼽을 수 있다. 근래에 왓어바웃이즘을 특히 사랑한(?) 정치인으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목적을 위해 불공정하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2016년 대선 당시에도 이런 정치적 부조리에 대한 지적이 반복됐는데, 그때마다 상대 주자였던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삭제 사건을 논하며 화제를 비틀어버리곤 했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예가 차고 넘친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을 거다.
왓어바웃이즘이 논쟁 전략으로 힘을 얻고 있는 또 다른 분야로 ‘기후변화’가 있다. 많은 예가 있는데 ‘빈곤이나 실업 등 더 급박한 문제가 있는데 왜 지금 기후변화에 그토록 신경을 써야 하는가’라는 논리도 그중 하나다. 집중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통해 기후변화 문제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이다. 빈곤이나 실업이 중요한 과제인 건 사실이지만, 기후변화 역시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 급박한 문제인 건 확실하다. 또 다른 예로 ‘중국과 같은 나라가 석탄 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는 상황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주장이 있다. 말 자체로는 틀린 게 없어 보이지만 실은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자기보호적 논리가 숨어 있다.
일상에서 사회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문제 해결보단 논의를 피하고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전략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는데 ‘인지부조화’도 그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인지부조화는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 믿음 등이 서로 모순되거나 충돌할 때 불편을 느끼는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이럴 때 이런 반갑지 않은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자기합리화’를 시도한다.
본질 흐리고 회피·책임전가 악순환
다시 기후변화 문제로 돌아가 좀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즉, 현재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 그 누구도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걸 인지하는 순간 책임감, 부끄러움, 걱정, 두려움 등의 감정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피하고 싶어 한다. 이때 사람들은 책임을 묻는 자를 오히려 규탄한다. 말하자면 ‘내가 환경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그럼 넌 뭘 하는데!’ 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왓어바웃이즘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결국 ‘그러는 너는’ 식의 대응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의미 있는 논의를 방해하며, 동시에 회피와 책임전가의 악순환만을 남긴다. 더구나 이 전략의 사용으로 인해 사회분열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야 하는 논쟁전략이다. 며칠 지났지만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에 바치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