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반도체소재 수출규제 해제와 향후 과제

입력 2023-03-28 05:00수정 2023-04-1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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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일본의 반도체소재 수출규제가 발생한 지 약 3년 8개월이 경과한 2023년 3월 16일, 일본이 수출규제를 해제하고 한국은 WTO 제소를 취하하며 약 4년에 걸친 무역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일본의 반도체소재 수출규제는 한일 정치·외교적 마찰이 경제 분야까지 파급을 일으킨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반도체소재 수출규제의 원인에 대한 양국 정부의 입장은 달랐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수출관리 미흡을 원인으로 지목하였으며, 한국 정부는 대법원의 일제 강제 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풀이하였다. 이후 일본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였으며, 한국은 WTO에 일본을 제소하였다. 반도체소재 수출규제의 여파는 매우 컸다. 악화한 한일 관계로 인해 한국에서는 대일(對日) 불매운동이 촉발되었으며 이후로도 한일 관계는 긴 시간 동안 악화 일로를 걷게 되었다.

반도체소재 수출규제가 크게 쟁점이 되어 온 이유는, 기존의 한일 갈등이 정치외교 분야에서 주로 발생한 점과는 상이하게 경제분야, 특히 무역공급망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생산활동을 하는 기업에 있어 재료 공급에 대한 불확실성은 중장기적 리스크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일본의 원천기술과 재료, 기계설비 등을 필요로 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 및 그 외 여타 관련 산업에서 한일 무역분쟁이 재발할 수 있다는 리스크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었다. 반도체산업 자체의 중요성 또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의 고부가가치 창출은 물론 여타 산업에의 기술파급효과가 막대하며, 군사안보 기술에까지 폭 넓게 활용된다는 점에서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은 날로 증대하고 있다. 일례로 2022년 7월 미국은 기술패권 경쟁 승리를 목표로 하는 ‘반도체‧과학법’을 입법, 인공지능 및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 역량 강화를 위해 2,8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시행할 것을 천명하였다. 특히 미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 건설 지원 및 한국, 대만, 일본과의 반도체 공급망 동맹(Chip 4)을 추진하여 반도체 산업 관련 기술개발과 공급망 안정화를 동시에 꾀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와 미국-중국 전략경쟁 등 국제정세가 신냉전 체제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요 에너지 수출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며 에너지 공급망이 개편되고 있으며, 러시아 견제를 위한 세계 각국의 수출입 제재 또한 글로벌 공급망에 악영향을 끼쳤다. 또한 미국-중국 신냉전 갈등으로 유발된 미국의 경제안보 조치(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역시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급망 안전망 확보와 첨단기술의 연구개발이 국가를 넘어 세계정세 전체의 중요한 목표이자 과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즉 현재의 국제분쟁은 전통적 군사안보의 영역을 넘어 경제, 첨단기술 영역에서의 주도권 분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역공급망 안정화와 첨단산업 육성은 한국의 중장기 경제발전과 국가안보 확보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특히 방위산업 및 고부가가치 산업과 연관성이 높은 반도체산업의 무역공급망 안정화는 국가안보의 차원에서도 필수적인 과제다.

이에 한미일 경제안보 협력체제 구축 필요성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한미일 경제안보 협력체제는 좁은 의미로는 국내외 공급망 강화와 경제이익 증대, 넓은 의미로는 국가의 군사안보역량 강화는 물론 국제질서의 자유 및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주도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한일 양국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같은 민주주의 가치 공유, 지리적 인접성 등 협력 시 상호이득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한다. 한일 무역분쟁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한일 양국 정부의 중장기적인 협력관계 및 지속적인 소통 채널 구축 등 미래지향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위기(危機)와 기회(機會)는 기(機)라는 글자를 공유하고 있다. 위기 속에는 언제나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위기의 시대 속 한국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서는 위기를 정확히 마주하고 기회를 포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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