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장기휴가 활성화를 '캠페인'으로 추진한다고?

입력 2023-03-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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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노동시간 개악 저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과로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과거 다녔던 직장에서 경험한 일이다. 한 팀원이 부장에게 배우자 출산휴가를 신청했다. 당시 법정 유급휴가는 3일이었다. 그런데 부장은 결재 후 팀원을 따로 불러 하루 반차, 하루 휴가, 하루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그리곤 “어쨌든 3일 쉬는 것 아니냐”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웠다.

1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사례를 숱하게 겪었다. 성급한 일반화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육아휴직 대상 남성 19만3119명 중 배우자 출산휴가를 사용한 남성은 1만9684명(잠정)에 불과했다. 법정휴가란 말이 무색하다. 출산휴가뿐일까. 야간·휴일근무가 일상인 이들에게, 또는 대체자가 없는 이들에게 휴가·휴직은 그림의 떡이다. 기자로 고용노동부를 출입했던 탓에 대응법, 신고 절차를 문의하는 지인들의 연락도 많이 받았다.

이런 상황에 고용부는 근로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겠다며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활용한 장기휴가 활성화를 대책으로 내놨다.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확대(주→월 이상)에 따른 집중근로 허용으로 장시간 근로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근로자들을 달래려 고안한 정책이다. 그런데 그 수단이 무려 ‘캠페인’이다. 고용부는 근로자들의 귄리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에 충분히 실효적이란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숱한 부조리는 모두 권리의식이 부족해 생긴 일이란 건가.

장기휴가를 고민하기 전에 휴가를 못 쓰는 상황부터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원인부터 봐야 한다.

휴가를 못 쓰는 문제는 크게 조직의 문제와 개인의 문제로 나뉜다. 조직의 문제는 주로 인력구조에 기인한다. 휴가·휴직 발생에도 인력 공백이 없으려면 휴가·휴직자를 포함한 현원이 필요인력의 120%는 돼야 한다. 그런데, 대다수 중소기업은 필요인력만큼만 또는 그보다 적게 현원을 유지한다. 결국 휴가·휴직자가 발생하면 인력에 공백이 생긴다. 기업으로선 휴가·휴직이 달갑지 않다. 이를 개선하려면 초과 채용 기업에 대한 재정·세제혜택 확대가 필요하다.

개인의 문제는 흔히 쓰이는 말로 ‘사바사(사람 by 사람)’다. ‘나는 휴가도 반납하고 야근하는데 너희가 감히….’ 같은 생각을 지닌 꼰대 부서장 한 명 때문에 직원들은 휴가를 못 쓴다. 눈치 봐가며 구구절절 휴가 사유를 설명하느니, 차라리 쉬는 걸 포기한다. 합리적 이유 없이 휴가를 못 쓰게 하는 부서장에 대해선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을 폭넓게 적용하는 게 방법일 수 있다. 현재는 ‘휴가 사용 시 불이익’을 고지하지 않으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휴가 복귀자에 대한 ‘업무 폭탄’, 무언의 압박은 불이익 고지가 아니다.

고용부 발표대로 휴가 활성화는 장시간 근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수단이다. 캠페인, 근로자 권리의식 향상은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다. 정책 수요자들로선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 장기휴가 활성화를 놓고 쏟아지는 비판과 조롱을 정부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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