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옴부즈] 부실 인사검증이 가져다 준 수확

입력 2023-03-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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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승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전 대한법무사협회장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자가 임기 시작도 전에 임명 하루 만에 사퇴했다. 경찰수사 총수를 뽑는데 검사 출신의 추천에서부터 뒷말이 많았던 터였다. 결국 자녀 학교폭력(학폭) 문제에 개입한 것이 드러나 사퇴하여 씁쓸하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학폭과 부실 인사검증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그 이면을 들추어보면 중요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하나는 검사 출신의 임명으로 수사권 조정 취지를 도외시한 인사였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번 사태가 평범한 가정과 그 자녀들에게 좌절감을 심어줬다는 점이다.

수사권 조정 거꾸로 되돌린 인사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경찰청 소속으로 전국 수사경찰을 지휘하는 곳이다.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1차 수사기관이 되면서 탄생한 수사의 중추적 역할이 기대되는 곳이다. 수사의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사건에 대해 경찰청장도 간섭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검사공화국으로 불리는 상황에서 국수본부장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원석 검찰총장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검사 출신의 임명은 누가 봐도 검찰권 확대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법적으로는 검사도 임명 못할 바가 아니나 수사권을 두고 경찰과 검찰이 갈등을 빚고 있는 지금은 아니다. 서로 간의 견제를 통해 균형을 유지한다는 본래의 취지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경험 있는 외부인사 영입으로 책임수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는 그동안 수사역량을 홍보해 온 경찰 입장과 다를 뿐만 아니라 수사력 부족만 자인한 꼴이 됐다. 그러면서 수사권 조정은 왜 그토록 집요하게 요구했는지 알 길이 없다.

또 하나는 이번 사태로 평범한 시민들이 크나큰 상실감을 맛봤다는 사실이다. 헌법은 국민이 능력에 따른 균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능력이라는 것도 돈에 좌우된 지 오래다. 권력과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사고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학폭 자체의 문제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자녀의 일탈에 권력자인 부모가 개입하여 학교 처분에 불복하고 법을 무기로 어떻게 해보려 한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보통의 부모라면 먼저 내 자녀를 책하고 피해 학생과 부모에게 사과한 후 선처를 구함을 도리로 여길 것이다. 더욱이 정 씨는 당시 고위직 검사로서 검찰청 인권감독관이라는 지위에 있어 누구보다도 인권에 귀 기울였어야 했던 인물이다.

그런데도 사과는커녕 학폭위의 전학처분에 대해 대법원까지 끝장 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 가처분까지 신청했다가 패소하거나 기각당했다니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정 씨의 사회적 지위로 볼 때 청소년 문제를 학교와 함께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였다.

절대강자 계급에 짓밟힌 피해자

교육현장에 맡겨야 할 일을 법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 분탕질을 쳐 놨다. 이러라고 법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절대강자 계급에 짓밟힌 피해 학생과 부모의 비참함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피해 학생이 극단적 선택까지 하려 했다니 그 심각성을 안 봐도 알겠다. 반면에 가해 학생은 그런 권력자 부모에 힘입어 명문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흡사 이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를 다룬 드라마가 현실화한 듯하여 소름 돋는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진 자들의 저급한 민낯이라면 암담하다. 학교를 믿고 자녀를 맡긴 평범한 시민들과 그 자녀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절망감을 안겨줬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피해 학생과 부모에게 죄스럽다.

학폭과 부실 인사검증의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학교다움과 공직청렴을 위해 백번 공감한다. 한편으론 부실 인사검증 덕에 이런 부조리한 일이 묻히지 않고 낱낱이 까발려져 천만다행이다. 그런 면에서는 수확이다. 권력자나 가진 자에 의해 자행돼온 이런 행태야말로 사회의 밑동을 좀먹는 행위다.

이번 사태는 특정 세력 알박기로 경찰수사권 침탈, 힘 있는 자에 의해 왜곡된 교육현장, 제 식구 봐주기성 부실 인사검증 등 구조적 부조리의 종합판에 가깝다. 부실 인사검증에 대해서는 반드시 응분의 책임이 따라야 하며 인사 검증라인부터 검증해야 한다. 이어 시민 눈높이에 맞는 국수본부장을 찾고, 학폭 문제는 법이 아닌 교육적으로 접근하여 학교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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