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삼성 고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의 퇴진으로 상징되는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고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를 시도한 지 꼭 1년이 지난 이날 ‘리더십 부재’를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삼성 내부에서 현재 리더십 부재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당장에 닥친 상황(세계적인 경기후퇴)을 헤쳐 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즉답을 피해갔다.
‘당장의 상황’과 ‘10년 뒤를 본 투자’ 사이의 거리는 요즘과 같이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비추어 볼때 너무 먼 갭이다.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존재의 제1의 원칙은 ‘생존’이다.
흔히 기업 존재의 첫 번째 조건으로 생각하는 ‘이익 창출’이 ‘생존’ 다음의 문제인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개인이든 법인이든 간에 오랫동안 살아남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기왕이면 ‘잘’ 살아야 한다.
삼성에게 ‘10년 뒤를 본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이 ‘리더십 부재’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정작 ‘그 고민’이 삼성그룹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하는 설명에는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그는 “걱정의 내용이 (삼성의)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리더십 부재를 걱정하는 것이 삼성 임직원 전체의 합의인지는 내부 문제이니 제 3자가 왈가왈부 할게 없다고 치자. 다만 삼성의 10년 뒤를 걱정할 ‘밖’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일까를 더듬어 보자.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이 잘 돼서 ‘일자리도 늘리고, 달러도 많이 벌어왔으면 좋겠다’는, 아니 최소한 ‘삼성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도 어려울 수 있을 테니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도의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 10년 뒤에는 어떤 신수종 사업으로 성장해야 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어떤 투자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하는 정도의 밀도 높은(?) 고민을 하는 삼성 ‘밖’의 사람들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전자 등 각 계열사에 투자한 개인 및 기관 투자자들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밖’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삼성의 움직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투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각 증권사의 기업분석 담당자들은 “10년 뒤를 보고 지금 주식을 사라”고는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분기 전망을 근거로 투자를 권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멀리 본 것이다.
오히려 재계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문경영인 체제는 단기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어 ‘오너십 경영’이 장기 투자나 신성장사업에 더 적합하다”는 언론의 보도들을 통해 삼성 외부에서 나오는 ‘리더십 부재’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짐작할 뿐이다.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 장기적인 전망을 전제로 위험을 각오한 투자결정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또 다수의 기업을 통합 경영하는 그룹조직의 의사결정 구조의 시너지 효과를 무시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지난 1년간 독립경영체제의 실험에 더해 삼성의 도약을 위해서 그룹경영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이 과거 그룹경영에 따른 권한과 책임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감안하면 삼성의 리더십 부재를 극복하는 방안이 무엇인지는 보다 분명해 진다.
그래서 김상조 교수(한성대)가 “금융위기를 핑계로 과거의 의사결정 구조로 슬그머니 되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라면서 “삼성그룹이 이런 내외부의 우려를 확실하게 불식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한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지난해 4월 22일 삼성그룹에서 발표한 경영쇄신안의 10대 항목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시 삼성그룹은 지주회사 전환과 순환출자 해소를 “장기과제로 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독립경영체제하에서 시스템도 잘 돼 있고, 유능한 CEO들이 있고…선형적인 발전은 해 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있다. 다만 중간, 중간에 도약하는 점프를 해야 하는데 이를 이끄는 힘, 리더십은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가 과제이고 고민거리이다”
깊어지는 삼성의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삼성 관계자의 표현처럼 “그룹 전체적으로 가장 큰 변화의 시기였던” 지난 1년의 출발점인 ‘경영쇄신안’의 약속을 보다 빠른 시간 안에 완결하는 것이 바로 ‘고민의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