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정말 안 좋아…당분간 인상 없다”
소주와 맥주 등 음식점 술값이 6000원까지 오를 기미에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서자 주류업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고물가와 주류세 인상 등 가격 인상 요인은 커지고 있음에도 자칫 술값을 올렸다가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이에 주세 인상을 계기로 주류업계의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으나 당분간 인상 없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27일 정부와 주류업계에 따르면 서민 대표 주류인 소주와 맥주 가격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정부가 본격적으로 가격 통제에 나섰다. 주류 가격 인상 제동에 대한 가능성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근 발언에서도 읽힌다.
추 부총리는 22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세금이 어떻든 요금에 원가 부담은 있고, 이를 시장 가격에 전가하는 게 일반적 행태는 아니다. 물가 안정은 당국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각계의 협조도 필요하다. 세금이 조금 올랐다고 해서 주류가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올려야 하나에 대해 업계와 얘기해보겠다”면서 인상 자제 시그널을 업계에 보냈다.
경제 컨트롤타워의 발언은 기재부와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부처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기재부는 주류업계의 소주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실태조사에 착수했고, 여기에는 업계 전반의 수익 상황도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주류업계를 직접 담당하는 국세청은 업체 관계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를 비롯해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공정위는 민생 분야 담합 행위를 중점적으로 조사한다는 방침을 내세우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주류업계는 속내가 불편하다. 인상 요인 등 할 말은 많지만, 정부 서슬이 퍼렇다 보니 조심스럽기만 하다. 정부가 올린 주세를 올린데 따라 맥주와 막걸리는 내달부터 출고량에 비례해 세금이 부과되는 종량세 인상 영향을 받는다. 소주는 영향이 없지만 최근 소주병 제조업체가 공용 녹색병 가격을 40원 올려 제조원가가 올랐다. 또 업계에서는 작년 7.8% 올랐던 소주 주정(에탄올)의 가격이 올해에도 인상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소주 출고가가 오를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주세와 병 가격, 원재료 등 제조 원가가 올라갈 요인들이 가득한 것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주류업체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다고 하는데 밉보이면 안 되니 속에 있는 얘기를 다 꺼낼 수도 없다. 시기가 정말로 좋지가 않아 관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영 상황이 악화해도 버티다가 불가피하게 가격을 100원 미만으로 올려도 음식점에서 500~1000원 단위로 인상하니 제조업체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사실 억울한 측면도 있다”면서 “정부의 제재가 있다고 해서 아예 손을 놔버릴 수도 없으니, 경영상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이런 압박은 주류업계에 상당한 부담이 됐다. 하이트진로는 이날 당분간 소주 가격 인상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인상 요인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현재 경제 상황에서 소비자와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고자 결정한 조치”라고 밝혔다. 오비맥주도 당분간 인상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