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톡!] 미국 법으로 판단받는 한국 기업간 지식재산 분쟁

입력 2023-02-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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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환구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특이 현상이 반복되면 보편이 된다. 한국 기업끼리 지식재산권 분쟁을 한국 법원이 아닌 미국 법원이나 행정기관인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진행한다. 최근 6년 만에 1심 판결이 나온 ‘보톡스’ 소송에서 대웅제약에 승소한 메디톡스는 2017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지방법원에 대웅제약과 미국 협력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당시 미국 법원은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등 주요 당사자가 한국 국적이니 한국에서 소송하라는 취지로 절차를 중단했다. 메디톡스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웅제약 등을 상대로 보톡스 제제의 균주 관련 사용금지와 손해배상청구 등의 소를 제기한 때는 2017년 10월이었다.

2019년 1월에 메디톡스는 다시 ITC에 대웅제약과 미국 협력사를 불공정 행위로 제소했고, ITC는 2020년 12월에 대웅제약의 보톡스 제제에 대해 21개월간 수입금지 명령을 내렸다. 대웅제약의 불공정행위가 인정된 것으로, 이번 국내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있다. 2019년 4월에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ITC에 제소했고,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10년간 미국으로 수입할 수 없다는 판단은 2021년 2월에 결정되었다. 두 사건 모두 신속하고 강력한 증거조사를 거쳐 2년 이내에 결론이 났다. 한국 기업끼리 다투면서 미국 법원과 행정기관으로 가는 이유는 미국 시장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빠른 판단도 중요하다. 미국에서 특허침해 사건의 1심 판결을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약 2.5년이다. 미국에서는 분쟁 해결을 위한 증거수집이 가능해서 사건의 실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미국 법원은 지식재산의 가치를 인정해서 손해가 인정되면 충분한 배상을 명령한다.

미국도 배터리, 태양광 시설, 친환경 차량 생산기지 등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들고나와야 했다. 그러나 지식재산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를 위한 법률체계와 제도를 정립한 것만으로, 고액의 소송비용을 부담하면서 한국 기업이 스스로 달려간다. 한국에 건설할 예정이던 배터리와 전기자동차 공장을 미국에 세우면서 한국의 일자리가 미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한국에 남아 수출하는 기업마저 법률서비스를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받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한국은 여전히 증거개시제도도 없고 변리사의 소송대리도 허용하지 않는다. 문환구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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