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민]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였습니다(Happily ever after...)

입력 2023-02-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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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진 미국 럿거스 뉴저지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가 어렸을 때 친숙하게 읽던 동화의 끝은 이렇다. 고귀한 성정의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일어나 멋진 성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살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는 개인의 선하고 올바름도 중요하지만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초현실적 존재의 등장도 빠질 수 없다.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TV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사실 이러한 원초적 환상을 현실로 창조하는 것이다. 개도국에 가서 학교나 보건소를 지어주는 프로그램, 집 개조 프로그램, 성형 프로그램 등 신비로운 존재를 대체하는 셀럽이 가져오는 마법에 주인공들의 고난은 눈 깜짝할 사이 극복된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작년 11월 동남아 순방 당시 만나게 된 캄보디아의 옥 로타(Ork Rotha) 군과의 사연도 비슷한 서사를 가진다. 프놈펜에서 김건희 여사는 가정형편으로 심장 수술을 받지 못하는 소년의 가정을 찾는다. 김 여사의 방문은 TV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마법을 싣고 왔다. 소년은 12월에 발전된 한국에 와 서울 아산병원 의료진에 의해 수술을 받고 1월 마지막 날 궁궐과 같은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초청받는다. 김 여사는 소년을 다시 한번 번쩍 들어 팔에 안고, 대통령은 축구공을 소년에게 선물하며 묻는다. “축구 좋아하나?” 심장이 안 좋았던 아이는 “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셋은 같이 공놀이를 한다. ‘캄보디아 소년과 약속 지킨 김건희 여사’라는 영상은 이 만남이 김건희 여사가 처음부터 공들여 준비한 행사라는 자막과 함께 잔잔한 음악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서사를 훈훈하게 바라보고, 로타 군의 행복을 빌며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가. 이 과정에서 좀 더 성찰해야 할 부분은 없는 것일까.

먼저 이 서사는 ‘White men’s burden’이라는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선진국(백인)이 (식민지화를 통해) 개발도상국 시민들에게 의료 교육 등을 제공하여 그들의 사회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무. 이는 원조가 자칫하면 시혜적 시각에서 공여국의 자기이익을 위한 활동이 될 수 있음을 함축한다. 로타는 2018년 캄보디아 헤브론 의료원에서 한국 의료진의 방문 심장수술을 받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후속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를 보면 캄보디아 내에서 그의 심장질환을 치료할 만한 의료진이나 기술이 없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어, 로타의 어려움은 주로 수술 비용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반드시 한국 의료 기술로만 치료가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면 아픈 아이를 한국까지 데려오기보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실력 있는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안은 없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로타 군에 대한 의료지원은 크게 인도주의적인 정신에 기반하겠지만, 도움의 ‘약속’을 지킨 미담 창출, 우리나라의 발전된 의학기술 홍보, 혹은 선교와 관련된 동기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으로 빈곤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쓰이는 스토리텔링의 수단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노동이 본질적인 가치와 존엄성에 의해 평가되기보다는 시장에서 교환이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빈곤이라는 문제 역시도 홍보나 모금 수단으로 상품화될 수 있다. 자극과 반전과 감동을 추구하는 미디어의 성향상 빈곤을 겪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독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그림으로 왜곡되고 과장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걷는 것이 가능한 열네 살짜리 아이가 여사의 팔에 안겨 처연한 표정을 짓는 사진은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후원금 모금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고정관념을 강화하기도 한다. 즉 개도국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변화를 이끌어가는 모습보다, 그들의 열악한 상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들은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 또한 빈곤을 국제관계,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개별 가정의 어려움, 자선의 시각으로 대하게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로타가 귀국한 후에는 어떻게 살 것인지 하는 뒷이야기를 상상해봐야 할 것이다. 마법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지, TV 프로그램의 뒷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말이다. 개도국 보건소나 학교를 지어주는 프로그램을 보면 건축 비용은 후원금으로 부담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보건소나 학교에는 의사와 선생님이 파견되어야 하고, 의약품과 책, 학용품이 공급되어야 하지만 이는 개도국 중앙 혹은 지방정부나 지역사회의 장기적 예산책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통 이러한 일회성 사업들은 정부와 조율 없이 시작되어 운영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용도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 로타 역시도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끝이 아니라 귀국 후 정기적 건강검진, 약물치료 등 관리가 필요할 텐데 이런 이야기는 극적이지도 않고 잘 다루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로타는 운 좋게 혜택을 받았지만 비슷하거나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다른 로타들이 느끼는 소외감, 그로 인한 갈등과 분열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캄보디아와 같이 분쟁과 내전이 있었던 지역은 선택적 원조가 지역사회 내 갈등과 불평등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며, 때로는 아무 개입도 하지 않음으로써 해를 끼치지 않는 것(‘do no harm’)이 최선일 수 있다. 이를 보면 한 아이를 선택해 감동의 서사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개도국 자체에서 수많은 로타 같은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구조적 틀을 만드는 데 협력하는 것이 보다 형평성을 높이며 큰 파급력을 가지지 않을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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