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니] 밀레니엄 힐튼호텔 영업종료 D-1…“작별은 웃는 얼굴로”

입력 2022-12-30 13:37수정 2022-12-3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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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기차가 움직인다!”

“자, 어서 브이해봐”

약 30년간 밀레니엄 힐튼서울 호텔 지하로비층에서 경적을 울린 ‘힐튼 열차’가 움직이자 곳곳에서 어린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기차와 함께 아이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부모님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이른 오전이었음에도 힐튼 호텔을 필두로 벌룬 등 미니어처로 꾸며진 작은 전시장 앞은 힐튼 호텔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한 인파로 북적였다.

▲30일 남산 밀레니엄 힐튼 호텔 영업종료 하루 전날 호텔 내부 전경. (김혜지 기자 heyji@)

30일 영업 종료를 목전에 둔 바로 전날 밀레니엄 힐튼서울 호텔을 방문했다. 서울 남산 인근에 위치한 힐튼서울은 31일 자로 영업을 완전히 종료한다. 31일 이후 예약은 전면 불가하며, 자선사업 일환이던 '힐튼 열차' 전시도 올해로 막을 내린다. 1983년에 세워져 현대 서울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힐튼호텔은 이지스자산운용에 매각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커피, 맥주 등을 판매하는 1층의 ‘밀레니엄 힐튼 실란트로 델리’의 케이크, 각종 베이커리 상품은 점심쯤 전부 완판됐다. 글라스, 보틀로 팔던 와인 메뉴도 이미 조정돼 일부 커피 메뉴만 판매되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주문을 마친 50대 남성 A 씨는 계산을 돕는 호텔 직원에 “그동안 고마웠다”라면서 작별인사를 건넸다. 직원은 “저도 감사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30일 남산 밀레니엄 힐튼 호텔 영업종료 하루 전날 고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혜지 기자 heyji@)

▲30일 밀레니엄 힐튼서울 델리. 케이크가 이른 점심경에 전부 완판됐다. (김혜지 기자 heyji@)

밀레니엄 힐튼호텔은 서울 88올림픽의 유산이다. 대규모 ‘해외 귀빈’을 모시기 위해서는 고급 숙박시설이 필요했다. 당시 힐튼호텔 부지는 복잡한 사업지구만큼이나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라는 ‘시대적 명분’ 앞에서 대통합은 가능했다. 정부의 강력한 입김과 자본력을 앞세운 대우그룹을 필두로 호텔 사업이 일사천리 진행될 수 있던 배경이다. 설계는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로 꼽히는 김종성 씨가 맡았다.

코로나19로 호텔업계가 휘청이면서 힐튼호텔도 위기에 몰렸다. 삼정KPMG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호텔업계 총 매출액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꾸준히 평균 10조 원 규모를 기록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수요 감소로 6조3761억 원까지 급감했다. 영업이익도 1조 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힐튼호텔은 지난해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에 1조 원에 매각됐다.

▲힐튼 로비에서 호텔의 40년 역사를 담은 소규모 전시가 운영 중이다. (김혜지 기자 heyji@)
▲힐튼 호텔 내부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다. (김혜지 기자 heyji@)

이지스자산운용은 해당 호텔을 철거하고 2027년까지 오피스, 호텔 등 대규모 복합단지를 지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적자만 내는 호텔 운영보다 재건축을 통해 용적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실제 해당 부지 인근을 재건축할 경우 활용 가능한 면적이 최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평가된다.

힐튼호텔은 애당초 태생 자체가 ‘자본 원리’에 따라 세워진 만큼, 다시 ‘자본 원리’에 따라 밀려나게 됐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1960년대에 도입한 ‘랜드마크 보호법’에 따라 금전적 가치보단 건물이 갖는 역사적, 건축적 가치로 보존하도록 하고 있다. 힐튼호텔의 전체 그림을 그린 김종성 씨 스승의 역작 ‘뉴욕 시그램빌딩’이 그렇게 살아남았다. 결국 힐튼호텔의 퇴장은 ‘자본의 승리’이자, 랜드마크로서 ‘콘텐츠 빈곤’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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