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담소] 저항에서 수용까지

입력 2022-11-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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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우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회장·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

키가 큰 연수(가명) 씨는 학창시절 또래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불안과 우울이 심해졌다. 무가치한 자신을 단죄해야 한다는 환청이 생기면서 자해를 시작하였다. 연수 씨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정신병원 주치의로부터 아들이 정신분열병이라는 말을 듣자 불같이 화를 내며 병원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연수 씨를 병원에 못 가게 하고 기도원으로 보내서 굿도 여러 번 하였다. 하지만 연수 씨의 환청과 망상은 더 심해졌고 결국 건물에서 투신하여 지체 장애까지 갖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연수 씨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항정신병약을 잘 챙겨 먹고 있으며 동료들과 카페에서 바리스타 일을 하며 특유의 멋진 미소를 자랑하고 있다. 정신질환이라는 고통에 저항하였던 연수 씨 모자는 의도치 않게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 회복의 과정을 수용할 수 있었다.

한편,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끊임없는 저항운동을 통해 비로소 독립을 이루었다. 저항운동은 당시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일생에 큰 고난을 가져왔지만, 그 희생은 선진 대한민국이라는 유산을 후세에 남겨주셨다. 만일 우리 선조들이 일제의 지배와 강탈을 수용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얼마나 더 큰 고난을 겪고 있을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불치병을 선고받은 사람은 죽음을 부정하고, 분노하고, 때로는 타협하고, 우울에 빠지는 일종의 저항단계를 거쳐서 죽음을 수용하게 된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저항은 연수 씨의 경우처럼 더 큰 고난을 가져올 수 있다. 한편으로 어떻게 해야만 하는, 불의로 인한 고통에 대한 저항은 또 다른 많은 이들을 위한 성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미래의 죽음을 선고받고 세상에 내던져짐으로써, 살아내기 위하여 몸부림칠 수밖에 없으니 그 모든 게 저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술과 담배도 내 삶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저항인 줄 알면서 끊어 버리는 게 쉽지 않다.

어차피 모든 저항은 수용, 그리고 성장을 향한다고 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수용해야 할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지나온 저항을 깨닫고 더 좋은 것에 대한 수용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나이는 먹더라도 성장을 지속할 방법이다.

황정우 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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