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횡재세 도입 열풍] 성패 엇갈린 횡재세 역사

입력 2022-11-21 06:00수정 2022-12-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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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당시 최소 22개국, 기업에 초과이익세 부과
미국, 연방정부 세수 약 40% 횡재세로 충당
대기업 회피에 중소기업 타격 입자 폐지
지미 카터 정권 당시 유가에 매겼다가 비난받기도
영국은 보수당이 주도해 횡재세 거둬

▲영국 런던에서 5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저임금과 재산세 부과, 의료 민영화와 관련해 시위를 벌이고있다. 런던(영국)/EPA연합뉴스
횡재세(초과이득세)는 사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최근 들어 많은 주목을 받고는 있지만, 세계 각국은 일찍이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횡재세를 채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차 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 등 최소 22개국이 기업의 과도한 이익에 세금을 부과했다. 당시 이들은 투자자본 수익의 최대 9%까지를 대상에서 제하고 그 이상의 모든 이윤에 대해선 20~60%의 세율로 과세했다.

당시 미국의 경우 최초의 횡재세로 큰 성과를 거뒀다. 세입은 약 70억 달러(약 10조 원)에 달했고, 이는 전쟁 자금으로 거둔 전체 연방 세수의 약 40%를 차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1차 대전 당시 횡재세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많은 타격을 줬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지적했다. 정부의 바뀐 과세 정책에 대기업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회피 방법을 찾아낸 탓이다. 이들은 비싼 변호사와 회계사를 통해 투자자본 측정값을 부풀렸고 그만큼 초과 이익의 납세 의무를 줄였다. 결국, 절반의 성공을 거둔 미국 횡재세는 전쟁이 끝난 후인 1921년 보수 공화당에 의해 폐지됐다.

미국은 2차 대전 때도 새로운 버전의 횡재세를 마련해 빠르게 자금 조달에 나섰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당시 횡재세는 1943년 미 정부 세수의 22%를 창출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2.2%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기업과의 타협으로 인해 이들이 초과 이익을 산정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했고, 그 결과 1차 대전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돼 종전 직후 다시 폐지됐다.

1980년 지미 카터 정권 때 부활한 횡재세는 엄청난 실패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연방정부가 부과한 횡재세는 기업 초과이익에 대한 것이 아닌 소비세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치솟는 휘발유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석유 산업에 횡재세를 매긴 것이 결과적으로 유가에 세금을 부과한 꼴이 됐다. 그마저도 유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되면서 정부가 거둔 세수는 예상에 훨씬 못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도 그간 횡재세를 도입해 왔다. 지난 40년간 최소 세 차례에 달한다.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거릿 대처 등 보수당 정권이 오히려 나서서 도입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대처 정권 당시 제프리 하우 부총리는 경기침체 여파를 피했다는 이유로 시중 은행들로부터 12개월 순이익의 20%에 해당하는 4억 파운드(약 6398억 원)를 과세했다. 1990년대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는 민영화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52억 파운드에 달하는 횡재세를 거뒀다.

영국이 미국과 또 달랐던 점은 2000년대 초반 유가가 치솟던 당시에는 횡재세를 부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많은 노동당 의원이 횡재세를 지지했지만, 브라운 총리는 자칫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미국이 직면했던 비난을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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