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②中企 지위 상실로 공공조달 참여 제한…정책 지원도 끊겨

입력 2022-1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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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공조달 계약규모 184조…중견기업 비중은 26조 수준 그쳐
설비ㆍ컨설팅 등 지원 대상 제외…인지도 높아졌지만 혜택은 줄어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을 나누는 매출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 커지고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만들어진 매출기준(업종별 상한선 400억~1500억 원)이 인플레이션 등 최근의 경제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을 위해 기준부터 재정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중소기업 범위인 400억~1500억 원 매출기준은 박근혜 정부가 중견기업의 양적 확대를 위해 2013년 마련했다. 한 중견기업계 관계자는 “당시 정부가 중견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중소기업 범위를 단순화 하는 방향으로 개편했다”며 “정부는 상한선 800억 원의 단일화 방안을 제시했고, 중소기업계는 인위적인 중소기업 지위 상실과 중소기업 비중 축소를 우려해 최소 2000억 원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 절충안이 지금의 기준선이다.

그러나 이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계에선 연매출 상한선인 1500억 원에 임박한 기업 대부분이 현행 매출 기준에 대한 불만이 클 것”이라며 “특히 수입 원자재로 중간재를 납품하는 기업이나 공공조달시장 납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매출 기준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견기업계에서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 수는 0.7%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공공조달 계약 규모는 약 184조 원이지만 이 중 중견기업계가 차지하는 규모는 14.3%(26조 원)에 그친다.중소기업 지위를 상실하면 공공조달시장에서 품목에 따라 참여가 제한된다는 의미다.

중소기업들이 매출 기준선을 넘을까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공공조달시장 참여 제한 등 정부의 각 종 지원대상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금속업체인 A기업 대표는 중견기업 진입 이후 정부 정책지원 단절을 절실히 체감했다. 중소기업 위치에선 환경설비 마련에 3억~5억 원 가량의 정부 지원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지원대상에서 배제된다. 기본적인 컨설팅 비용 역시 과거 2억 원 가량 혜택을 받았지만 현재 지원액은 ‘제로’다. 전액 자비를 투입하거나 컨설팅을 포기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코로나19 확산의 영향 등이 겹치면서 매출 규모는 500억 원 가량 줄고, 적자로 전환했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B 기업 대표도 “중견기업으로 올라서면서 대외인지도 높아지고, 한 단계 성장했다는 성취감이 크지만 중소기업 졸업 후 신규 직원들은 청년내일채움 공제 혜택 등을 받지 못하는 등 각 종 혜택이 줄어드는 점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중견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으로 전환한 기업들이 가장 난감해 하는 부분은 조세혜택이다. 매년 실시하는 중견기업실태조사에서 조세혜택과 금융지원, 공공조달지원은 회귀를 검토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연구개발(R&D)세액공제의 경우 중소기업은 연구비의 25%를 공제받는 반면 중견기업은 1~6년차는 15%, 이후에는 8%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다.

중견련 관계자는 “중견기업들이 매출 확보로 외형이 커져 각종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데, 대기업보다 신용등급은 낮아 금융권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견기업은 경제 허리라 불리지만 사실상 중소기업와 대기업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라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선 중견으로 가는 낮은 매출 문턱과 짧은 중소기업 유예기간 등이 기업이 스스로 성장을 포기하는 피터팬증후군을 부추긴다고 보고 있다. 추 본부장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근로자 수나, 자본금, 매출 등 복수여건을 갖추거나 물가지수 변동에 따라 매출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도 기업의 숨통을 틔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매출기준 상향 시 중견기업계 규모나 성과 축소는 불가피 하다. 중견기업법 제정 당시 3000여 개였던 중견기업 수는 2020년 기준 5526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단순히 매출 상한선만 높아진다면 중견기업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내 경제 총 매출의 16.1%, 수출 18.3%, 고용 13.8%라는 성과도 쪼그라들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매출기준 상향이 경계선에 임박한 기업이나 이제 막 기준을 넘어간 기업을 위한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되긴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400억~1500억 원 기준이 결코 낮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하고, 디플레이션이 왔을 때 기준을 다시 하향조정 할 수는 없다”며 “중소기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중견기업으로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선 기준선을 재정비하기보다 중소기업 졸업 유예기간을 늘려 연착륙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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