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지병원 외래교수
‘그곳에 야생맹수가 나타나는지 미리 검색을 해보아야 했는데, 만약 심하게 다치거나 죽기라도 했다면….’
‘앞으로는 우리 동네에도 출몰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멍멍이도 당시에는 나 못지않게 공포에 질렸었고, 당분간 그 산 근처에는 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많은 시간을 그 사건에 몰두하느라 에너지를 쏟지는 않는다. 일단 지금 이 집은 안전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인지하고 있으므로.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안 한 게 내 인생의 발목을 계속 잡고 있어요.”
“경기는 최악이고, 아이들은 아직 어린데, 앞일만 생각하면, 눈이 아찔해요.”
진료실에 찾아오는 분들의 고민과 관심은 거의 다 과거와 미래에 집중되어 있다. 과거에 초점을 맞추면 ‘우울’이 찾아오고, 미래에 시선을 돌리면 ‘불안’이 찾아온다. 그래서, 인간은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며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나는 이 경구를 이렇게 해석한다. 이 지구에 78억 인구가 살지만, 길어도 150년 안에 다 생을 마감할 것이다. 즉, 누구도 예외 없이 시한부 인생인 것이다. 각자의 여명이 몇 년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길고 긴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서 나에게 하루란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살아 있고, 이 장소에 사과 묘목이 같이 뒹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순간을 위해서라도 심고 물을 주는 것이 어떠할까?
다시 ‘사고 실험’으로 돌아가자. 지금 나는 집에 있고, 문은 안전하게 잠겨 있다. 집안의 공기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고, 아주 아늑하다. 창밖의 풍경은 평화롭고, 내 근육과 장기는 기분 좋은 피로감을 전해 주고 있다. 멍멍이를 껴안고, 소파에 같이 누우니 따스한 체온이 전해지며, 잠이 스르르 밀려온다. ‘지금 여기’는 안전하고 평화롭다. 그게 다다.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