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길 잃은 청년임대주택, 혐오시설 낙인에 '두 번' 운다

입력 2022-09-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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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양평동5가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예정부지 인근 아파트 단지에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정용욱 기자 dragon@)

‘쪽방임대 결사반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5가 인근 한 아파트 외벽에 붙은 대형 현수막 글씨는 수백 미터 밖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수십 미터짜리 현수막에는 노란 바탕에 빨간색으로 쪽방임대 네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파트 단지 인근에는 임대주택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길가를 따라 내걸렸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서울시가 1400가구 규모 역세권 청년주택(청년임대주택)을 바로 앞 롯데칠성 차량공장 부지에 짓기로 하자 반대 목소리를 석 달 넘게 내고 있다. 시와 주민간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청년임대주택 건설 계획은 한없이 미뤄지고 있다.

청년임대주택 사업이 주민 반대로 멍들고 있다. 서울시가 저소득 청년층 주거 부담을 덜기 위해 주요 시작한 임대주택사업으로 총 1만 가구 이상 사업시행인가가 진행됐다. 하지만, 지역 내 주민 반대에 가로막혀 사업지역 상당수가 입주자 모집 시기조차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25일 본지 취재 결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5가 청년임대주택 건설 사업은 잠정 중단됐다. 주민 반대가 심해 행정당국이 여러 차례 의견 조율에 나섰지만, 매번 실패했기 때문이다. 롯데칠성 부지는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과 선유도 공원과 가깝고 서부간선도로, 올림픽대로와 맞닿아 ‘알짜사업지’로 꼽힌다. 일대 주민들은 이곳이 청년임대주택 입지로 부적합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청년주택의 필요성은 공감하되 내 집 주변에는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전형적인 님비(Not In My Backyard)다.

인근 H아파트 입주민 A씨는 “가뜩이나 도로도 좁고 편의시설도 부족한 지역에 1400가구 짜리 임대주택을 지으면 인구가 더 늘어나 주민들이 살 수 없을 것”이라며 “출퇴근 시간에 한 번만 와서 보시면 왜 이렇게 반대하는지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또 “주변에 초등학교도 있는데 청년들이 단체로 들어와 살면 교육환경도 나빠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근 C공인 관계자는 조금 더 솔직한 얘기를 들려줬다. 이 관계자는 “아무래도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브랜드 단지나 상업시설이 아닌 임대아파트가 들어온다고 하니 반길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5가 인근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사진=정용욱 기자 dragon@)

청년임대주택이 주민들이 꺼리는 ‘님비’ 시설로 낙인찍히면서 지역 내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인근 496가구 규모 당산동 청년임대주택은 내년 1월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주변 H아파트 입주민은 “수 차례 주민들이 반대하고, 구청에도 민원을 넣었는데 무시하고 다 지어버렸다”면서 “(청년임대주택에 대해) 좋게 보진 않는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으니 그만 물어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반발이 커지다 보니 예산 집행은 물론이고 목표 공급량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까지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계획은 8만 가구에 달하지만 지난 해 1월 기준 공급률은 27.5%에 불과하고 2017~2019년 배정예산(670억300만 원)의 20.8%에 불과한 139억3100만 원만 집행됐다.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지만 주무기관들 역시 '노력하겠다'는 말 외에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청년임대주택을 담당하는 서울시 전략주택공급과 관계자는 “주민 반대가 심하고 지역주민과 사업자가 원만한 사업 진행이 어려운 곳은 더 이상 사업을 이어갈 수 없다”며 “청년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는 반대를 위해 만들어낸 논리이므로 주민간담회를 통해 최대한 설득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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