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퇴직한 국가공무원이 8501명이었다. 2017년에 비해 약 2000명(32.6%)이 늘었다. 신참 퇴직자가 급증한 반면 정년을 채운 공무원도 역대 최대였다. 신참은 떠날 생각을 하고 이직이 어려운 고참은 정년까지 버틴다는 의미다. 공직사회가 활력을 잃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퇴직자 수는 매년 증가세다. 2017년 6412명에서 2018년 6867명, 2019년 7426명, 2020년 7711명 등이었다. 5년 차 이하가 25.7%에 달했다. 6급이 1997명으로 가장 많았고 7급이 1318명으로 뒤를 이었다. 8· 9급 공무원 퇴직자 증가세가 가팔랐다. 8급은 2017년 319명에서 작년 519명으로 4년 새 62.7% 늘었고, 9급도 2017년 450명에서 706명으로 56.9% 증가했다. 거꾸로 정년을 채운 공무원도 2645명으로 전체의 31.1%에 달했다.
갈수록 떨어지는 공시생 숫자가 공직에 대한 실망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7년 22만 명대였던 공시생이 지난해엔 16만 명대로 급감했다. 6월 본지가 ‘매력 떨어지는 공직’ 시리즈에서 다뤘듯이 열악한 처우가 가장 큰 요인이다. 2020년 공무원의 민간임금 접근율은 90.5%였다. 민간임금 접근율은 상용근로자 100인 이상 민간사업체의 사무관리직 평균임금을 100%로 했을 때 공무원 임금 수준이다. 2004년 95.4%에 달했던 공무원 임금 수준이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80%대로 하락했고 그 후 그나마 오른 게 그 수준이다.
하급 공무원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일반직 9급 공무원 1호봉은 본봉이 168만6500원이다. 7급 1호봉도 본봉 기준으로 180만 원대다. 본봉 기준으론 최저임금 191만4440원에도 못 미친다. 물론 근속기간에 따른 정근수당과 급식비·보조비 등 수당을 더하면 9급 1호봉도 최저임금보다는 많지만,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퇴직 증가세는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 좋은 행정고시 출신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일반직 고위공무원(1·2급) 퇴직자 중 정년퇴직자는 10.1%에 불과했다. 인사적체 압박이 큰 데다 정치 바람에 마음고생도 심하다. 정권 교체기마다 되풀이되는 적폐몰이도 공직사회의 사기를 꺾는다. 정권 말 ‘복지안동(伏地眼動)’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게다가 경제위기 때마다 임금 동결·수당 삭감 등 희생을 강요당하기 일쑤다. 4급 이상 고위 공무원의 내년 임금은 이미 동결됐다. 5급 이하는 1.7% 오른다.
공직사회의 사기 저하가 심각하다. 자칫 무력감이 확산돼 공직사회 전반의 역량 저하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유능한 공무원 조직은 성공적 국정 운영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공직사회 전반의 분위기 쇄신과 함께 공직에 자부심을 줄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