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잠이 보약

입력 2022-08-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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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쓰고, 지우고 한다. 종일 한 운동(?)이라고는 화장실이나 커피 한 잔을 이유로 몇 걸음 옮긴 게 전부다. 그럼에도 하루 일과가 끝나갈 때가 되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것 같이 몸이 파김치가 된다. 머리 쓰는 일만 했는데 이렇게 종일 몸을 움직인 것처럼 고단하고 지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리뇌연구소(Paris Brain Institute)의 안토니우스 빌러(Antonius Wiehler) 연구팀이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8월호에 발표한 실험보고에 의하면 이는 글루타메이트(glutamate)와 연관이 있다. 뉴런과 뉴런 혹은 뉴런과 근육 사이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연화학물질을 신경전달 물질이라 부르는데, 글루타메이트는 이런 화학 메신저 중 하나다. 이 물질의 과다분비는 뇌의 지나친 흥분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뉴런과 신경망이 손상될 수 있다. 보고서에서는 이런 흥분독성((Excitotoxicity)을 가진 글루탐산의 축적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로 강도 높은 정신노동을 꼽고 있다.

실험은 40명의 피실험자들로 하여금 여러 날 동안 매일 7시간 가까이 수천 건의 PC 과제를 풀게 하고, 중간중간에 자기공명분광기(magnetic resonance spectroscopy; MRS)를 이용해 신경계에 특정분자가 축적되는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테스트 참여자들은 초 단위로 바뀌는 알파벳을 붉은색 모음 a 혹은 파란색 자음 b와 같이 색이나 자모음 같은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동시에 표시된 문자를 직전에 본 적이 있는지도 표기해야 한다. 이 인지제어 작업은 난이도에 따라 두 개의 버전으로 나뉘는데, 24명의 참가자는 어려운 그리고 나머지는 쉬운 버전으로 과제를 수행했다. 모니터 앞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참가자들의 피로도는 증가했고, 실수를 하는 빈도 역시 높아졌다. 그리고 당일 테스트가 끝난 후에는 난이도와 무관하게 피실험자들 모두 심한 피로감을 토로했다.

피실험자들은 이 작업과 더불어 경제 보상을 선택하는 과제도 수행했다. 즉, 작은 노력으로 단시간 내에 받을 수 있는 적은 금액과 액수는 크지만 이를 받으려면 좀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보상을 받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더 긴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테스트는 피실험자들이 자기통제를 얼마나 오랫동안 잘 유지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안됐다. 어려운 버전의 과제를 수행한 참가자들일수록 액수는 작지만 받기 쉬운 보상을 자주 선택한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는 뇌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동안 피로와 자제력의 저하가 훨씬 자주 나타남을 의미한다.

이마 부근에 위치한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PFC)은 감정조절, 자기통제 그리고 복잡한 업무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말한 MRS 영상에 의하면 강도 높은 정신노동을 한 참가자들의 경우 이곳에서의 글루탐산 축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로 인한 뇌의 신진대사 변화로 피로 증가 및 자기 통제력 저하가 나타나는 걸로 연구팀은 추측한다.

그렇다면 이 대사물질의 과도 생산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빌러의 동료이자 소르본느 대학의 뇌과학 연구자인 마티아스 페르실리오네(Mathias Pessiglione)의 주장에 의하면 현재로는 휴식과 수면이 최선이며, 수면 중에 축적된 글루타메이트가 분해된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고 한다. 잠이 보약이란 말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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