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유로-달러 패리티, ECB의 고민

입력 2022-07-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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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택 경제칼럼니스트

유로화는 애초에 유럽연합의 경제통합과 역내 단일시장을 꾀함과 동시에 유일한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대항마로서 출발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유로의 가치는 유럽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면서 급락하고 있다. 연초에 비해 달러는 대부분의 통화에 대해 약 12% 이상 평가절상되었지만, 유로는 2002년 12월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게 평가되고 있다. 유로는 지난 12일 1유로 당 1달러, 즉 패리티로 거래되었다. 패리티란 유로와 달러 가치가 같아진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는 유로가 약하기보다 달러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과연 유로의 가치는 그대로인데 달러가 강해서 패리티가 된 것일까? 유로가 과도하게 평가절하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슨 이유로 유로는 시장의 신뢰를 잃은 것일까?

유로화의 약세에는 외부 요인과 내부 요인이 있다.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외부 요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미국은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에너지 자원으로 인해 수입할 필요가 없는 반면, 유로 경제권은 석유, 가스 등과 같은 에너지 자원의 수입을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전쟁 시 달러는 안전한 투자 대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둘째, 유럽중앙은행(ECB)은 인플레이션 위험에도 불구하고 회원국 간 경제적 불균형으로 인해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보다 금리 인상을 주저하게 된다. 셋째, 미국은 유럽 경제보다 경제정책적 조치를 일관되게 시행할 수 있다. 일관된 정책 실행력은 막상막하 관계인 달러와 유로의 대결에서 달러의 지위를 범접할 수 없도록 하는 요인이다. 넷째, 남·북 유럽 간 산업 및 채무구조의 차이가 크다. 특히 남유럽의 정부 부채비율은 위험수위로 기준금리를 조금만 인상해도 경기침체에 빠질 위험이 크다. 남유럽의 민간경제도 중국에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어 유로의 약세에도 경기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다섯째,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유로를 던지고 세계 최고의 통화인 달러만 찾게 된다. 결과적으로 유로는 대외적으로 적절한 평가를 받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유로 약세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유로의 약세로 인해 많은 이익을 낼 수도 있다. 미국 소비자는 유럽 상품을 이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구매하거나 동일한 가격에 더 많이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평가절하된 유로의 수출증대 효과도 국제적인 경쟁 속에서 점차 줄어들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이미 상당히 많은 제품군에서 중국 상품이 기존의 유럽 상품을 대신하고 있다. 유로가 평가절하됨으로써 얻게 된 유럽 상품의 가격경쟁력은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원자재와 중간재는 거의 달러로 결제된다. 달러로 수입되는 원자재 및 중간재는 이제 약해진 유로로 인해 더 비싸게 지급해야 한다. 이는 생산비용의 증가와 소비자가격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유로 약세는 유로 경제에 물가를 상승시키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로 약세가 지속될지 아니면 획복될지는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를 계속 공급할지 아니면 중단할지에 달려 있다. 유로의 태생적 한계는 과도한 부채를 가진 남유럽 국가들이 언제든지 유로존을 뛰쳐나갈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ECB가 지난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지만 유로/달러 환율에 별다른 영향은 없었다. 미 연준은 27일 기준금리를 지난달에 이어 두 달 연속 0.75%포인트(자이언트 스텝) 올렸다. ECB는 앞으로도 연준처럼 기준금리를 계속해서 인상할 수 있을까? 금리를 인상할 수 없다면 유로 가치의 하락 추세는 당분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남부유럽 국가들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채권의 원리금을 더 많이 부담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어느 나라든 금리가 인상되는 시기에는 일단 부채부터 줄이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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