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 미래학회 부회장
일하는 곳이 휴가지이고, 휴가지가 일하는 곳이 될 수는 없을까?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여러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일깨워주었다. 요원하고 어색하기만 했던 재택근무, 원격근무는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해 본 일의 형태가 되었다. IT, 금융 관련 업종이나 대부분의 일을 컴퓨터로 처리하는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일하나 집에서 일하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혼자서 일하는 어색함과 고립감, 가정 일과 아이들 돌봄으로 인한 업무 방해, 선임자로부터 적절한 조언을 받기 어려움 등 많은 우려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에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것만이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였다. 일과 가사를 병행하며 아이들과 더 친근해질 수 있고, 출퇴근 시간 대신에 더 휴식을 취하거나 자기개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번잡한 도심만이 아니라 동네에서의 소소한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더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되기도 하였다.
코로나19가 잦아들자, 일부 회사는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도록 하거나, 일부 회사는 사무실 근무와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직원들만이 재택근무의 장점을 본 것이 아니라 회사도 재택근무의 장점을 보았다. 당장 사무실 공간을 줄여서 경비를 아낄 수 있고, 원격근무 솔루션이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일부 회사들은 사무실 근무와 재택근무를 병행하거나 재택근무를 전면 허용하는 조치를 확대하고 있다. 회사로 복귀하라고 하자 원격근무를 허용하는 회사로 이직을 하는 사례도 나타나면서, 이제는 유능한 인재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원격근무를 허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재택근무, 원격근무가 일상적인 업무 형태로 자리 잡아가면서 더욱 적극적인 행동이 나타나고 있다. 도심을 떠나 휴가지에서 일하는 워케이션(Worcation)이다. 워케이션이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오랜 기간 휴가지에 머물며 일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일부 디지털 기업과 스타트업은 휴가지에 숙소와 업무 공간을 마련하여 직원들에게 워케이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워케이션이 가능해지는 것은 메타버스 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서 메타버스는 각자 따로 있는 직원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협업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넘어서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융합되어 새로운 메타버스 공간이 등장하고 있다. 이 메타버스 공간은 현실적 제약, 가상적 제약이 사라지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 휴가지인 물리적 공간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IT 업계의 불문율 중 하나가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수도권, 판교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먼 휴가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등장하는 세상이 되었다. 기술의 발전이 수도권 집중에서 벗어나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 흐름이 정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디지털과 휴가지라는 좋은 환경, 공간의 결합을 추구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워케이션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업무 시설만이 아니라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교육 인프라를 갖추는 노력도 해야 한다. 지방소멸이 아니라 워케이션 지역의 탄생을 위해서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메타버스와 워케이션에서 공간의 해방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