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현 (재)부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그동안 수도권 대학은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인구집중 유발시설로 분류되어 정원에 대한 총량 규제를 받아왔다. 정부는 지방의 반대가 예상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개정하기보다는 법 개정 없이 대학의 결손 인원을 활용하여 정원을 늘리려 하고 있다. 늘어날 첨단학과의 정원은 대략 8000명으로 추산되는데 수도권 4100명, 비수도권 3900명 정도로 예상된다.
비수도권에서는 이번 조치로 인해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모집난을 겪고 있는 지방대학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현재 대기업의 취업이 보장되는 ‘반도체 계약학과’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 외에 서강대·한양대가 추가로 반도체 계약학과를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연계하여 운용하고 있다. 비수도권에서는 올해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삼성전자와 협력하여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치하였다.
반도체 계약학과는 사실상 취업이 보장되기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하고, 입학성적 또한 최상위권이다. 그러나 기업체와 연계되지 않은 비수도권의 반도체학과는 사정이 다르다. 언론에 따르면 2022학년도 입시에서 포스텍을 제외한 지방 사립대 몇몇 반도체학과의 경쟁률은 1대 1 아래로 미달되었다. 대부분 대기업과 고용보장형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곳이다. 지방대에 첨단학과를 증원한다고 해도 수도권 반도체 계약학과처럼 대기업 취업이 보장되지 않으면 정원 미달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 또한 교수 충원이나 연구시설 확충 문제로 대학에 관련 학과를 추가 개설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부는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비수도권의 반발을 감안해 지방대에 재정 지원을 좀 더 늘리겠다는 입장이지만, 기업과 연구소가 집중된 수도권 대학과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편중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대가 상당수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로 인해 지역 불균형이 가속화할 수 있다. 2021학년도 등록자 기준 전국 대학 미충원 규모 4만여 명 중 75%가 비수도권 대학에서 발생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전국 대학 입학생 수는 10년 전보다 8.2% 줄었는데, 울산(-17.9%) 경남(-16.6%) 전남(-16.4%) 경북(-15.6%) 충남(-15.4%)의 감소세는 이보다 심각했다. 반면 서울(+0.9%)과 인천(+1.8%)은 입학생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영남·호남·충청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균형발전국민포럼에서는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및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 추진 규탄’이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반도체 인력양성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수도권 규제까지 풀어 수도권 대학에 그 기능을 부여하는 것은 망국병인 수도권 초집중화를 가중시킬 것이 자명하다”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한 “반도체 인력양성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닌 만큼 비수도권 지방대학에서 우선적으로 하도록 기회를 줘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목표 중 하나인 지역균형발전을 적극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수도권 규제 완화가 다른 분야로 더 확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요구하는 행정 규제 개혁은 상당수가 수도권에서의 공장 증설 등 투자 여건의 개선인데, 이번 반도체 인력 충원 조치가 수도권 규제 완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새 정부가 표방하는 ‘지역 균형발전’이 슬로건으로만 그칠 수 있다. 지방대학 육성 등 5개 교육 분야 국정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비수도권에 인적·물적 역량을 집중시킬 혁신적인 조치가 필요한 때이다. 위기에 빠진 비수도권 대학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종합대책과 지방대학이 지역혁신과 지역발전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