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 보복·협박에도 속수무책…여성 변호사가 더 취약

입력 2022-06-14 17:35수정 2022-06-1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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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 변호사에게 수임료 반환 등 무리한 요구 잦아"
"재판 결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대화·중재 기구 필요"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인근 변호사 사무실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 구급대원들이 사상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법조타운의 한 빌딩에서 재판 결과에 앙심을 품은 소송 당사자가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질러 7명이 사망했다. 사건 이후 법조계의 두려움이 커지는 가운데 여성 변호사의 경우 남성 변호사보다 의뢰인에 의한 보복·협박 등에 특히 노출되기 쉽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4일 이투데이가 만난 다수의 변호사들은 "여성 변호사가 남성 변호사보다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갈등이 많고 위협에도 쉽게 노출된다"며 "충분히 의사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욕설·고성은 다반사…'여성'이어서 함부로 하는 경우 많아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남성 변호사에게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사안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판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와서 (심한 욕설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행패를 부리는 것은 일상다반사"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남성 변호사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요구사항도 제대로 말 못하는 일도 있다. 반면, 여성 변호사는 만만하게 보고 '소송에서 졌으니 수임료를 돌려달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윤미 변호사 역시 "승소를 했음에도 약정된 보수를 지급하지 않은 경우가 주변에 있었다"며 "젊은 여성 변호사라는 게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봤다.

패소를 이유로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지속해서 벌어지는 1인 시위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는 "변호사 사무실 특성상 문은 항상 열려 있고, 개인 사무실은 도움을 줄 사람도 적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영미 변호사는 "폭력은 없지만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장윤미 변호사는 "의뢰인의 소개로 다른 의뢰인을 만나는 구조에서 법적인 대응으로 악의적인 소문이나 나쁜 평판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 제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대구 사건 진상조사가 우선…대화·조정 위한 제3의 기구 필요

법률사무소 정의 문혜정 변호사는 "대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우선돼야 한다"며 "개인이 조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의뢰인이 법원의 결정·변호사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대화할 수 있는 창구 등을 만드는 게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 역시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분쟁을 예방할 어떤 방법도 없어 조정을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대구 방화범은) 물론 잘못했지만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거나 판결에 수긍해야 된다는 것을 아무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은 것 같다"며 "재판 결과에 당장은 화가 나고 변호사의 설명을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제3의 기관이 존재해서 친절히 알려주고 대화했다면 분노가 폭발하는 일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법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앞선 변호사는 "이유가 적혀있지 않은 불친절한 판결문이 다수 있다"며 "변호사가 결과에 대해 의뢰인에 설명을 해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판결에 대해 재판부·의뢰인·변호사 사이에 충분한 소통이 되지 않으니 '상대 변호사가 전관을 썼다'거나 '변호사를 믿을 수 없다'는 오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재판에 대해 설명하려는 사법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변호사에 보복·협박을 한 경우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했다. 장 변호사는 "양형을 높이는 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안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변호사 역시 효과에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 변호사는 "행위를 엄단한다는 법원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직업군 사이의 형평에 어긋날 수 있다"며 양형 강화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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