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 조사관 “변 하사, 생전 군 복귀 의지 강했다”
“군사건, 경찰 때 느낀 유족들의 아픔과 또 달라”
“고인의 명예회복까지 함께 고민하는 사회 되길”
자식의 죽음을 복기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여전히 군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를 떠나 보낸 부모들이다. 아이를 잃은 엄마·아빠들의 시간은 멈춰 있다.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그들은 국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간다.
고(故)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사망 연관성’을 직권조사한 서준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8일 이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이제는 우리 사회가 남아있는 유족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고인의 명예회복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준 조사관은 유족을 만나는 게 일이다.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는 부모들을 만나고, 군내에서 비리를 은폐하려는 시도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1948년 11월 이후 발생한 군 사망사고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한시적 기구로 2018년 9월 공식 출범했다.
경찰청에서 파견 온 서 조사관 역시 25여 년의 수사 베테랑이다. 그는 2001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 2016년 양천경찰서 강력팀 등을 거쳐 위원회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위원회의 조사관은 과거와 달리 군 소속 조사관이 배제되고 검찰과 경찰, 민간 인력으로 구성됐다. 그는 “경찰관 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단순 조사인 줄 알았지, 군 의문사까지 깊게 들여다볼 줄 몰랐다”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는 “여기 오기 전 극단적 선택 사건만 몇백 건을 맡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경찰 조사에선 타살이냐 아니냐 범죄 혐의점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보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군내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고드는 게 기존에 해왔던 일과 달랐다”며 “‘이 친구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를 수도 없이 되물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경찰일 때 느꼈던 유족들의 아픔과는 또 달랐다. 이곳을 찾아오는 엄마, 아빠들은 오랜만에 휴가 나온 자식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더 먹이지 못한 무거움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그는 “경찰일 할 때는 사건 그 자체 이상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유족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조사해보니 군 사건은 또 다른 아픔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변희수 하사의 부모도 잊지 못했다. 사망과 복무 중에 발생한 사고 또는 질병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을 규명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그는 5개월 동안 변 하사의 죽음에 군의 강제 전역 처분이 영향을 줬는지를 조사했다. 정신과 전문의들의 소견, 심리부검 결과, 변 하사가 남긴 메모들까지, 그가 쫓은 기록들이다.
서 조사관은 “변 하사의 고등학교 친구들도 만났지만 가장 힘든 이들은 역시 변 하사의 부모님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변 하사 부모는 언론뿐만 아니라 위원회에서 의견 표명을 조심스러워 했다. 서 조사관은 “신경 안 쓰겠다고 하지만 조사 과정 동안 유족들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져줬다. 한 번씩 전화 통화하면서 ‘이렇게, 이렇게 됩니다’라고 설명해드리면 항상 감사하다고 말씀 주셨다”고 떠올렸다.
생전 그가 지인들과 나눈 고민을 묻자 ‘생활고’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렸던 변 하사의 흔적들도 마주했다. 그는 고향인 청주에서 원룸형 아파트를 얻어 홀로 생활했다. 서 조사관은 “복직이 어려워지면서 지인들에게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토로했다. 여기에 길어진 재판 기일 탓에 심리적 중압감도 강해졌다”고 했다.
이에 지난 4월 위원회는 법의학 자문 등을 토대로 부당한 전역처분이 주된 원인이 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판단했다. 또 고인의 사망일이 복무 기간 만료 전임을 함께 확인하면서 국방부에 ‘순직’ 심사를 권고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기본적으로 권고사항은 받아들겠지만 사실관계를 좀 더 확인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5개월간 변 하사 관점에서 생각해본 그에게 물었다. ‘변 하사가 살아있었다면 전차 조종수로 다시 복직할까’. 서 조사관은 고민 없이 곧바로 “그럴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고등학교 친구들, 지인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항상 공통으로 들었던 말이 바로 ‘나는 군으로 돌아가야 한다’였다. 그만큼 간절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군 사망사고에 있어서 진상규명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가 남아있는 유족의 아픔도 들여다보고 고인의 명예회복까지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