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그 어려운 직립보행을 잘하려면

입력 2022-05-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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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지난주 내내 자가격리 수준으로 방구석에만 있었더니 마음이 ‘광합성’을 좀 하고 오라고 한다. 간만에 긴 산책을 할 요량으로 얼굴에 허연빛이 돌 정도로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챙 넓은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챙겨 나갔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무릎에 통증이 오고 무엇보다 걷는 게 어색하다. 날아다닐 나이는 애초에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다리 근육도 멀쩡한데, 며칠 집에만 있었다고 걷는 게 힘들고 막 걷기 시작한 아이처럼 걸음걸이가 어색해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서고 걷기를 반복한다. 그러니 이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싶지만 사실 알고 보면 상체를 곧추세우고 두 발바닥에 온 체중을 실어 움직이는 건 도전 그 자체다. 사람 몸은 두 개의 가벼운 나무젓가락 사이에 무거운 역삼각형이 얹힌 형태를 갖고 있다. 생각만 해도 불안정한 구조지만, 누워 있을 때는 넘어져 다치는 사고의 위험이 그리 크지 않다. 이유는 이런 자세에서는 무게중심이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에는 뾰족한 받침대에 올려놓아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하는데 이걸 무게중심이라 한다. 그리고 웬만한 자극에도 이 지점이 잘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안정된’이란 표현을 쓴다. 인체의 무게중심은 골반 선상에서 배꼽 아래 지점에 있다. 사람이 누워 있을 때는 몸이 지면과 맞닿는 면적이 넓다.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 무게중심이 잘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두 발로 몸을 지탱하는 자세를 취하면 땅과 접촉하는 면이 발바닥 넓이로 확 줄어들고, 이로 인해 조그만 움직임에도 무게중심이 크게 흔들려 넘어지기 쉬워진다. 그러니 직립의 자세로 쓰러지지 않고 몸을 앞으로 이동시키는 게, 다시 말해 몸의 균형을 잡는 게 얼마나 만만치 않은 일인지 알 수 있다.

인간이 왜 직립보행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유가 무엇이든 중력을 거스르는 이런 자세로 큰 어려움 없이 걷고 뛰고 춤까지 출 수 있다는 건 특별한 능력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인간이 이 경이로운 능력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1990~2017년 사이에 낙상 사망자의 비율이 이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커졌다고 한다. 이는 평균수명의 증가로 65세 이상의 노령층이 많아진 데 따른 현상일 수 있다. 나이 들수록 넘어지거나 떨어져 다치기 쉬운데,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아지니 낙상과 이에 따른 후유증으로 죽는 비율도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것만으로는 위의 빠른 증가율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이 결과 뒤에는 몸의 균형을 잡는 능력의 쇠퇴가 다른 연령층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런 추측을 사실로 확인시켜 주는 일련의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일례로 미국 성인들 중 1999~2007년 기간 낙상으로 사망한 비율이 연령층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한 결과 노년층은 물론 중·장년층(45~64세)에서도 넘어지거나 떨어져서 다쳐 죽은 이들이 40% 이상 많아졌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주원인 중 하나는 운동 부족이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낸다. 다시 말해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는 균형을 잡는 능력과 같이 트레이닝을 통해 향상되는 신체 기능의 퇴보를 가져온다. 이외에도 스트레스 혹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질환도 균형감각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구부정한 자세로 천천히 걷는 경향이 있고, 넘어지거나 할 경우 평형을 유지하는 기능이 일반인들보다 떨어져 크게 다칠 위험이 높다고 한다.

오늘 나의 걸음걸이가 서툴게 느껴졌던 이유가 일주일 내내 방콕을 한 탓인지 아니면 근래 들어 스트레스가 심했던 때문인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내 몸이 경고신호를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시각 새벽 네 시! 오늘 받은 빨간 카드를 떠올리며 성급히 글 맺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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