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차량 개발ㆍ경영권 승계 과제로 남아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공기업과 민영화된 공기업을 제외하고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2위로 올라섰다. 지난 1999년 15조375억원이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48조5720억원으로 3배 이상 뛰었고 영업이익도 1조6천664억원에서 2조1천857억원으로 상승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또한 자동차 생산 판매에서도 글로벌 5위의 메이커로 성장하는 등 세계속의 현대차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이같은 위상 제고가 정 회장의 품질ㆍ현장경영 강화 및 디자인 개선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던 과정에서 정 회장의 공로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내수시장에서 독과점의 논란도 있었지만 현대차의 꾸준한 품질개선 등으로 인해 국산차의 품질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좋은 차는 소비자가 먼저 알아본다".... '품질경영' 강화
현대차그룹이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인 정 회장의 '품질'에 대한 애착이었다.
현대차는 지난 1월 야심작 '제네시스'가 아시아 업계 최초로 대형차 부문에서 자동차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됐으며, 지난해 12월 자체 개발한 4.6ℓ 가솔린 타우엔진이 미국 자동차 전문지 워즈오토(Wardsauto)가 선정한 '2009 10대 최고엔진'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북미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바이블로 통하는 컨슈머 리포트지의 2007 차량 내구성 조사'에서 전체조사 대상 36개 메이커 가운데 전년대비 6계단 상승한 7위를 기록하면서 초기 품질뿐 아니라, 내구 품질면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음을 인정받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내구 품질이 좋을수록 차량 유지비용이 낮아지고, 중고차 판매 가격은 높게 형성된다"며 "내구 품질조사 결과는 차량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에게 구매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미국, 유럽 등 해외시장 현장 방문을 통해 품질 불량 차종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곧바로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판매급감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품질경영을 직접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생산 ▲영업 ▲A/S 등 부문별로 나뉘어져 있던 품질관련 기능을 묶어 품질총괄본부를 발족시키고, 매달 품질 및 연구개발, 생산담당 임원들을 모아놓고 품질관련 회의를 주재했다.
또한 시중에 팔리고 있는 차에 대한 문제점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 개발중인 차의 실물을 회의 참석자들과 함께 만져보고 들여다보며 품질 개선방안을 하나하나 지시하는 열정을 보였다.
정 회장은 생산현장에 자주 모습을 나타내는 그룹 총수로 유명하다. 이처럼 정 회장이 현장경영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에 적극 나설 때만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남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전세계 27개 공장 외에도, 각 권역별 지역본부, 판매 법인, 연구소 등 약 900여 개의 사업장이 전세계에 퍼져 있으며, 차량이 판매되는 국가만 190여개국에 이른다.
정 회장은 본사에 가만히 앉아서 생산ㆍ판매 현장의 경영을 주관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 국내 공장은 물론이고, 미국, 인도, 중국, 터키, 슬로바키아 등 해외 생산·판매거점을 직접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필요한 사항을 직접 지시하는 등 현장 챙기기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지난 2007년에는 한 분기에 두 번쪽로 해외 생산현장을 방문하는 등 현대차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처럼 취임 후 10년동안 현대차그룹이 놀라운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 자동차 산업의 성패여부가 '친환경 차량'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에 비해서는 한 발 뒤쳐진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도요타가 지난 1997년부터 하이브리드차인 '프리우스'를 양산하고 있지만 현대차는 오는 7월 첫 하이브리드 차량인 '아반떼'를 출시할 예정이다. 경쟁사들보다 뒤늦게 출발한 친환경 차량 시장에서 이미 벌어진 간격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는가가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표적인 강성노조로 분류되는 '노조 문제'도 현대차에게는 영원한 딜레마이다. 최근 경기불황으로 인해 일부 생산라인이 멈춰선 상황에서도 '노노갈등'이 전개되는 등 현대차에게 있어 노조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999년 이후 매년 반복되는 파업으로 인해 10년 동안 11조원 규모의 생산차질이 빚어지고 있어 그룹 경영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 회장에게 남겨진 또 다른 과제는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문제이다.
정 회장은 1938년생으로 이미 70세가 넘은 고령으로, 경영권 승계작업이 언제 이뤄질지가 재계의 관심사이다. 정 사장이 지난 6일 열린 기아차 주총에서 등기임원으로 재선임되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대표이사의 복귀는 미뤄져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재계 총수 일가의 지분변동현황을 볼 때 상속보다는 사전증여가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정 회장의 지분이 정 사장에게 넘어가는 시점부터가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작업의 시발점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