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여론기반 의사결정 vs 데이터기반 의사결정

입력 2022-05-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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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산 스윙 대표

얼마 전 사업자 대표, 시민단체, 지자체 담당자들이 모여 전동킥보드 서비스 운영에 대해 논의하는 간담회에 참석했다. 한참 토론을 듣던 담당 공무원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실제 데이터는 중요하지 않아요. 킥보드에 대한 여론이 너무 안 좋고, 시각적으로 위험해요.” 시각적으로 위험하다니, 이 어쩜 절묘한 말인가! 킥보드에 대한 여론이 사실과 다르더라도 그 여론을 따라야 하는 사람의 고충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여론은 민주시민들이 토론을 통해 공통적으로 형성된 공중의 의견이다. 여론은 법을 만들 때도, 이미 정해진 법을 집행할 때도 중요한 근거가 된다. 문제는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를 택한 우리 사회는 아테네와 달리 아고라에 모여 토론을 하며 여론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에 나오듯,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은 주로 매스컴이나 몇몇 오피니언 리더들에 의한 의견의 독과점 상태로 흐르기 쉽다.

게다가 요즘처럼 SNS 마케팅이 발달한 경우 과거보다 더 적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여론을 만들 수 있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자주 보는 것을 친숙하게 여기고 아끼고 믿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점을 통해 SNS에 자주 노출되는 ‘여론’에 대중은 익숙해지고 그것을 자신의 의견으로 여기게 된다.

반면 아테네 때와 달리 좋아진 점도 있다. 이제 거의 모든 정보가 데이터로 축적되어 논리와 수사에 의한 설득보다 사실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여러 철학 이념들이 충돌하던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리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만큼, 동일한 사실이 주어졌을 때 다른 결론을 내릴 가능성은 예전보다 훨씬 더 적다.

비싼 마차를 가지고 도로를 독점하던 특권층에 신흥 계층이 타고 다니게 된 자동차가 위험하다고 여론을 만들었듯, 자동차를 가진 기득권층에 전동킥보드는 ‘시각적’으로 위험하다. 타고 다니는 모습은 위태위태하며 둘이 타는 것은 곡예처럼 보인다. 인도에선 사람을, 차도에선 차를, 지하철 진출입로에서는 오가는 행인을 위협한다고 한다. 과연 실제로 그럴까?

지난 3년의 데이터가 말하길, 전동킥보드의 사고율은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물론 자전거보다도 낮다. 그나마 발생한 사고의 피해 규모도 훨씬 적은 편이다. 공유킥보드의 적정한 보험료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는 계리사 시험을 통과한 이들이 추정한 보험료는 이 사고율을 기반하여 가장 정확한 위험에 대한 추정치를 반영한다. 사고율 대비 너무 저렴하게 보험료를 책정하면 보험사가 손해이고, 너무 과하게 보험료를 책정하면 보험에 대한 수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론이 무시된다면 독재국가가 아니냐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의 큰 의사결정은 온전히 여론만을 따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리콴유, 우리나라의 박정희, 프랑스의 드골과 미테랑 등이 달성한 많은 업적들은 당시 여론을 완전히 무시하고 추진한 것들이다. 여론을 무시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여론이 데이터와 사실에 기반하는지, 아니면 두려움과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에 기반한 것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한국을 제외한 미국, 유럽, 일본의 정책 입안자는 이러한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입안자들이 ‘절대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라고 하며 본의 아니게 기득권을 보호하는 동안, 선진국들은 실증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에 기반하여 의사결정을 내린다. 게다가 결정을 내린 뒤에도 계속 데이터를 추적하여 정책을 조정해 나간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추구하고, 평소 누리고 있는 것이 마치 공기와도 같이 당연하다. 우리는 모두 차를 위한 도시에 익숙해져 있는 만큼 마이크로모빌리티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다 안전하고 깨끗한 도시에서 사람을 위한 공간이 많은 도시를 꿈꾼다면, 차는 줄이고 마이크로모빌리티를 늘려야 한다. 그 시작으로 당신의 ‘시각적 위험도’에 의존하기보다 실제 데이터를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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