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정권 교체기의 통상 정책

입력 2022-04-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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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가 우리 통상 분야의 당면 현안으로 다가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입신청’을 하고 윤석열 정부에서 가입 협상과 피해지원 등 ‘후속조치’를 하는 방향으로 큰 틀을 정한 것 같다. 정부 차원에서 공청회 등 필요한 절차는 형식적으로 마무리해 조만간 국회보고를 추진 중이다. 실질적 가입 협상이나 대책 마련은 1~2년 후이니 협상에 따른 부담이나 짐은 윤석열 정부에 떠넘기는 꼴이다.

의사결정 과정, 관계부처 협력, 대국민 홍보와 의견수렴에 미흡한 점이 많다. 더구나 현재는 정권 교체 기간이다. 정권 교체기에 통상 과제, 특히 농어업과 관련된 통상 이슈가 자칫 대형 국가적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차질 없는 준비를 바라는 차원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한다.

첫째, 새 정부가 출범한다 해도 통상 이슈는 국정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게 된다. ‘검수완박’, 코로나 피해지원, 경제 회복 등 산적한 국정 현안이 윤석열 정부 앞에 놓여 있다. 거대 자유무역협정인 CPTPP가 소홀히 다뤄질 수 있다. 우리 무역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통상 현안이나 당장에 피해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올해 2월 이미 시행된 RCEP(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도 큰 피해가 없다고 하면서 소홀히 대응하기 쉽다. 큰 국가적 현안에도 외교부와 산자부는 통상소관 다툼으로 물밑에서 힘을 낭비한다. 가입국이나 교역 규모 등 외형적 측면도 과거 다른 협정과 많이 달라 영향도 훨씬 광범위하고 클 것으로 전망한다. 외교나 통상 문제는 국정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윤석열 정부가 내달 초 출범하나 소관 부처 장관이 상세한 업무를 파악하기 어렵다. 통상을 다뤄 본 경험 있는 장관이면 그나마 다행이나 이해를 하는 것과 부처 간 협력은 다르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게 된다. 충분한 이해와 논의를 하고 일사불란한 범정부적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현실이다.

통상 조정 부처 역할도 불분명하다. 대통령 비서실 소관 수석들도 부담이 있거나 책임이 따르는 사안은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보고를 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국정을 ‘정상화’시킨다는 명분으로 밀어붙이기 쉽다. 소관 부처 의견이 무시되고 상황 판단에도 오류가 생긴다. 공직자들은 자신이 소속된 부처 중심의 판단과 대응을 한다. 범부처 차원의 협력과 대응이 힘들고, 순환보직 인사 시스템은 책임 의식을 흐리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일어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협상과 대응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장차관 임명이나 소관 부처와 관계없이 통상 문제는 범정부적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다루기를 기대한다.

셋째, 외부 정치권 압력이나 부당한 처리요구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의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파동이나 쌀 협상 파동, 김대중 정부의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체결과 한중 마늘협상 파동,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나 쇠고기 파동이 대표적이다. 작은 통상 이슈로 취급하다가 대형 국가적 사고로 확대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악화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대부분 장차관이나 고위급 인사경질로 마무리하였다.

한중 마늘협상 파동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제수석이 경질되었다. 당시 경제수석이 윤석열 정부의 초대 총리로 내정된 한덕수 내정자이다. 더는 이런 방식의 대처를 해서는 안 된다. 통상문제의 인식과 대응이 아직도 소관 부처 다툼에 머물러 있거나 문제가 터지면 책임소재를 따지거나, 장차관 경질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국가나 국민 수준에 알맞은 통상정책이 추진된다고 한다. 통상인력, 통상 조직, 통상 전략도 국민 수준에 비례한다고 한다. 1992년 필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파견 나가 선진국의 글로벌 이슈와 협상 대응 전략을 배웠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이다. 한중 마늘협상을 마무리하면서 약소국 설움과 협상의 그늘진 면을 보았다. 마늘은 금액이 적으니 더 규모가 큰 공산품 수출을 위해 양보하라는 내부 비판이 더 힘들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CPTPP 가입으로 연간 853억 원에서 4400억 원 정도의 농업생산량 감소를 추정한다. 피해 규모와 지원책도 중요하나 이해당사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도 중요하다. 3월 25일 개최된 공청회가 파행으로 끝낸 것을 보면서 진정성 있는 대화를 아쉬워한다. 4월 13일 여의도에서는 농민 5000명이 모여 CPTPP 반대 시위를 했다. 조만간 수산업계도 동조할 것이다. 더 확산되기 전에 범정부 차원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수출로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주장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경제력이 국가를 지킨다. 적도 동지도, 이념도 체제도 없는 것이 국제사회이다. 오로지 ‘국가이익’만이 있다. CPTPP를 연착륙시키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공동 대응체제를 갖춰 치밀하게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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