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경제연구소장
첫째, 국민의 근면성은 한국 경제의 지속성장과 위기극복의 초석이었다. 과거 수출기업의 엄청난 야근을 통한 납기단축, 중동에서 24시간 현장 가동을 통한 공기단축, 근무환경이 열악한 원양어업과 해운업에서의 성공신화 등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 국민의 근면성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느끼듯 이러한 근면성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구직자가 많다는데 지방 기업과 건설현장, 농촌과 어촌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소득이 높아지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도가 심하다. 우리 국민의 근면성이 훼손되고 있는 것은 소득 증가라는 자연스런 현상 이외에 잘못된 교육에도 큰 원인이 있는 듯하다. 젊은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엄청난 근면성을 요구하는 입시와 취업 준비에 모든 진을 빼, 사회에 나와서는 열심히 일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교육과 선발 기준이 근면성보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개혁은 논의조차 없다.
둘째, 한국의 인구구조는 그간 추가적인 성장 요인으로 작용하였지만, 앞으로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은 몇 년 전까지는 상대적으로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높은 국가로서 생산과 소비, 부동산 경기 등이 인구 덕을 크게 봤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어 조만간 경제와 생활 전반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줄 것이다. 노후 대비가 안 된 노년층의 노동시장 잔류 등으로 충격은 좀 늦게 나타나겠지만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대 정부는 다양한 출산율 제고 정책을 썼으나 효과는 거의 없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매년 세계신기록을 갱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정책보다는 괜찮은 일자리 확충과 집값 안정 등 한국경제의 미래를 밝게 만드는 것이 출산율 제고에 더 도움이 된다. 젊은이들이 자신과 자식들이 살 만한 나라라고 생각하면 스스로 결혼하고 아이도 알아서 낳는다.
셋째, 한국의 기업경쟁력은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이 이끌고 있다. 재벌의 정경유착과 로비, 탈법 불법 등도 있었겠지만 이들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국 수출은 60% 넘게 100대 기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기업도 사람과 같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쳐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존 대기업의 자체 혁신도 필요하지만,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성장의 사다리가 잘 작동해야 한다. 한국은 기존 재벌기업과 일부 플랫폼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성장 사다리를 타고 발전한 기업이 별로 없다. 한국 대기업들의 현재 경쟁력은 괜찮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이유이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오르지 못하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을 듯하다.
넷째, 물가 경상수지 재정 등 거시경제 상황도 불안해지고 있다. 원유 등 국제 원자재가격의 급등으로 물가는 크게 오르고, 경상수지는 흑자기조가 위협받고 있다. 여기에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예상되는 신냉전체제는 수출 환경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한국의 물가와 경상수지가 좋았던 것은 스스로의 노력보다 저유가 등 우호적인 국제경제 환경에 더 큰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재정수지는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위한 지출 확대로 조금씩 나빠지고 있는 데다, 급속한 노령화로 앞으로 더 빠르게 악화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재정건전성과 연금 흑자 등은 인구구조의 덕을 많이 본 것이고,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할 때가 곧 온다.
한국 경제의 외양은 괜찮지만 속으로는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해결도 쉽지 않다. 한 문제를 풀기 위한 단편적인 정책은 효과보다는 다른 쪽에 부작용만 키우고 있다. 출산율 제고를 위한 각종 지원 확대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계속 낮아지고 재정 부담만 커지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과학기술 분야의 지원 확대도 비슷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효과는 늦더라도 여러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제구조 개혁이 답이다. 성장 일자리 분배 등에 모두 도움이 되는 직업 간 과도한 보상격차의 축소와 함께 집값 집세의 하향 안정은 어렵더라도 꼭 해야 하는 정책이다. 고령화 속도를 볼 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