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부실 위험, 더는 미룰 일 아냐

입력 2022-04-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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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 자본시장1부장

“한은으로선 안타까운 일이지만,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잡으려고 신호를 주지 않으면 기대심리가 작용해 인플레이션이 더 올라갈 수 있으니, 선제적으로 금리 시그널을 줘 기대심리를 안정시키는 쪽으로 가는 것이 지금까지는 맞는다고 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말 그대로다.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신호이면서 ‘언제까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는 얘기다. 4월, 5월 통계를 보면서 판단하겠다고도 했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이주열 전 총재는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8년의 재임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로 침체한 국내 경기를 위해 다섯 차례 금리를 인하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가계부채가 1862조 원을 넘어섰고 늘어난 유동성은 부동산 시장과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 정세까지 급변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커졌다. 급기야 미국 등 선진국 통화당국이 10년간의 유동성 잔치를 끝내며 긴축의 길로 들어섰고 한은도 지난해 8월과 11월, 올해 1월까지 8개월 만에 0.25%포인트씩 네 번 인상해 1.50%까지 기준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향후 벌어질 후폭풍과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금융시장 악화를 우려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면 장래의 잠재적 위험이 커질 것이고, 금리 인상 속도가 과하면 또 다른 위험을 불러온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만 해도 세계 경제 회복에 탄력이 붙고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찬물을 끼얹은 것은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다. 러시아가 공급을 중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시장 매수세가 심화하며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가격이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원자재 공급 불안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가중했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목소리까지 있다.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 우려도 한층 커졌다. 주식 시장은 물론이고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고, 부동산 시장은 한층 위축된 모습이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회장은 1970년대와 유사한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야후파이낸스 행사에서 “지금 우리는 모든 전쟁(무역 전쟁·기술 전쟁·지정학적 영향력 전쟁·자본 전쟁·군사 전쟁)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세계화 추세는 뒷걸음질하고 국가 주권과 민족주의가 세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세계화의 종말’을 예상하며 투자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지난 글로벌 경기 회복이 저금리에 의존한 바가 크며, 생산성 향상이 아닌 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를 진작시켜 왔다는 점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야누스헨더슨이 지적한 것처럼 코로나19 확산 이후 각국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쏟아부으면서 지난해 전 세계 부채는 65조4000억 달러(약 7경9689조 원)로 사상 최대였다. 올해는 71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부채는 5년 전 1.8배에서 2.2배로 불어났다. 빨라진 금리 인상기에 각국은 부채 수준에 따라 늘어나는 기존 부채의 재발행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한국 경제도 이런 국제 금융시장 환경의 변화에 자유롭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 경제는 주요국 경기 개선세 약화,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으로 국내 순수출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또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 임금 상승이 제한되고 시장금리 상승으로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며 민간소비 증가율이 올해 3.4%로 작년(3.6%)보다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봤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를 10% 이상 줄이는 디레버리징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탄탄한 경기 상승기를 이어갈 수 있었고, 긴축 충격도 덜하다. 반면에 우리 경제는 저금리를 이어가면서 가계나 기업이 부채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하지 못해 금리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상황은 벼랑 끝을 향하는데 차기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보면 남의 나라 얘기 같다. 6·1지방선거 등을 의식해 부동산 대출 규제를 풀고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35조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겠다는 등의 선심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 치솟는 금리 상황에서 일차적 부담은 부채 의존도가 높은 자영업자나 한계가구 및 한계기업이 될 것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디레버리징 사이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심심찮게 대두되는 미국발 금융·자산시장 거품 붕괴 공포는 반짝 수출 증가로 잠시 안주해 있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세계 경제 둔화, 글로벌 금리 상승 추세가 심화한다면 한국도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 거세지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세상에 착한 금리는 없다.

인수위가 6·1지방선거 등을 의식해 잠재된 위험을 계속 뒤로 미루다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더 큰 부메랑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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