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집중해부] 우크라 사태, 세계화의 종말…‘번영의 날’ 끝나고 ‘몰락의 날’ 온다

입력 2022-04-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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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혜택 누렸던 세계화 끝나고 글로벌 경제 분열 직면
“새로운 철의 장막 드리우고 있어”
공장 이전·재고 과잉 축적 등 기업 부담 커져
“글로벌 기업 우선순위, 경제·무역서 안전·방위로”

▲사진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에서 19일(현지시간) 한 소년이 구호음식을 받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부차 시민은 러시아 침공이 시작되고 나서 지금까지 전기와 물, 가스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부차/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지면서 글로벌 공급망 혼란이 심화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세계 시장을 촘촘히 연결한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1970년대 이후 번영의 원동력이 됐던 세계화가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분쟁을 민주주의와 결부시키는 자세를 더 선명하게 하면서 기업은 중장기적인 공급망 재구축 압력에 노출돼 있다”며 “반면 러시아와 비서구 국가들은 세계화를 ‘전 세계의 서구화’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반발해 세계 경제가 둘로 나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정보서비스 아시아브리핑 설립자인 크리스 데본셔-엘리스는 ‘2022년 세계화의 끝’ 보고서에서 “새로운 철의 장막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세계화의 후퇴가 될 것”이라며 “세계화를 지탱했던 글로벌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는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적 처벌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벌어지는 상황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넘어 세계화를 놓고 벌어지는 세계적인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미국 투자은행 씨티그룹은 ‘글로벌 공급망: 정상 복귀의 험난한 길’이란 보고서에서 지난 40년 이상 세계에 혜택을 안겨준 글로벌 공급망이 난관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을 거치면서 시작된 공급망 혼란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층 악화했다. 코로나 시기, 공장 셧다운으로 생산이 급감한 반면 막대한 유동성 덕에 수요는 폭발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공급망은 1차로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서방사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대가로 러시아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공급망은 기능 정지 상태에 이르렀다. 특히 에너지 부문이 직격탄을 맞았다. 러시아는 세계 천연가스 수요의 약 17%, 석유의 12%를 생산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농축우라늄의 경우 러시아 로스아톰 산하 기업이 세계 시장점유율 40%를 차지한다.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은 ‘2022년 러시아 석유 공급 충격’ 보고서에서 러시아 석유 공급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가격은 장기간 크게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식량 위기도 심각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해바라기씨유 무역의 53%, 밀의 27%를 담당하고 있다. 러시아산 밀 수입 비중이 60%가 넘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비료 값 폭등도 식량 위기를 부채질한다. 비료 공급에 이상이 생기면 가격이 오르면서 전 세계 농산물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러시아는 세계의 질소비료 1위, 칼륨비료 2위, 인비료 3위 수출국이다.

반도체 대란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레이저용 네온의 주요 수출기업은 우크라이나에 있다. 또한 센서나 메모리 제조에 사용되는 팔라듐은 러시아가 세계 생산의 37%를 차지한다. IT 소트프웨어 개발·보수는 우크라이나의 주력 산업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IT 인재를 많이 고용하고 있는 서방 기업들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물류 비용도 부담이다. 글로벌 금융그룹 ING는 보고서에서 “러시아 항구와 영공 폐쇄로 화물 운송이 지연되고 우회에 따른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며 “공급망 문제는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코로나와 전쟁을 거치면서 글로벌 공급망 붕괴를 경험한 국가들은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기업들에 대한 압박도 커졌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보고서 ‘공급망 회복력의 강화’에서 “미국 기업들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면서 “해외에서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고 공급 체인을 다양화하고 재고를 과잉으로 쌓아둘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국과 기업들이 자체 공급망 구축에 뛰어들면서 효율적인 공급망을 기반으로 했던 세계화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벨기에 겐트대학교의 국제유럽연구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화의 종말’이란 보고서를 통해 “전쟁이 끝나고 대러 제재가 철회되더라도 글로벌 기업들이 지금 같은 방식으로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 운영에서 검토해야 될 우선순위가 경제와 무역에서 안전과 방위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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