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엔저 공포' 두렵지 않다…한국 경제 영향은 제한적

입력 2022-04-2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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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ㆍ日 주요기업 생산 기반 해외로
양국 간 주요 수출 경합도 하락세
日보다 중국ㆍ대만 등과 경쟁구도
엔/달러 18% 상승, 원화도 11%↑
엔화의 안정자산 당위성 지속 하락

과거에는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상승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이것도 옛말입니다. 양국 주요기업의 생산설비 대부분이 해외로 옮긴 데다가,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예전보다 양국 경합도가 많이 감소했거든요.

기업마다 의외의 답변이 쏟아졌다. ‘엔저’는 한때 공포에 가까웠으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최근 엔화가치가 급락한 데 따른 국내 주요기업의 반응은 뜻밖에 덤덤했다. 오히려 일부 품목은 반사효과마저 기대하고 있었다. “장기화 여부를 지켜보겠지만,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ㆍ달러 환율은 129.38엔까지 치솟았다. 2002년 4월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 전날까지 14거래일 연속 오름세였다. 지난달 이후 12%나 뛰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달러’의 몸값이 치솟은 게 배경이다.

▲최근 1년 사이 원ㆍ달러 환율과 엔ㆍ달러 환율 추이. 엔 환율이 18% 이상 상승하는 사이 원달러 환율도 11% 넘게 상승했다. 상대적으로 엔저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과 상쇄분이 생긴 셈이다.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日 무역적자 7년 만에 최대폭

일본의 무역적자도 엔저라는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전날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2021회계연도(2021.4~2022.3) 일본 무역수지는 5조3749억 엔(약 51조6000억 원) 적자였다.

적자 폭이 7년 만에 최대치에 달하자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팔겠다는 주문이 쏟아졌고, 엔ㆍ달러 환율이 급락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 확대에서 시작한 엔저는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내 주요기업은 이런 엔저 추이를 예의 주시 중이지만 예전처럼 수출 시장에서의 큰 타격을 우려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주요 국가의 환율이 모두 하락했다. 엔화가 1년 전과 비교해 18% 하락했으나 같은 기간 원화 가치도 11% 떨어졌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6원 내린 1,234.5원에 출발해 보합권에서 오르내렸다. 상대적으로 엔저 여파를 상쇄할 수 있는 여력이 우리에게도 생긴 셈이다.

한때 엔저는 우리 수출기업에 적잖은 타격이었다. 한국 주요산업은 1970~1980년대 산업화 추진 과정에서 일본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전자와 자동차 등 수출 품목 대부분이 일본과 겹쳤다. 엔저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반면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리먼 쇼크를 겪으면서 사정을 달라졌다. 수출선 다변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자본재와 소재는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출 시장에서 한일 양국의 품목별 경합도는 최근 10년 사이 점진적으로 하락 중이다. 전자는 품목별로 일본을 앞질렀고, 자동차 역시 토요타 정도를 의식할 뿐 나머지 브랜드는 이제 경쟁상대가 못 된다. (사진제공=제네시스)

◇품목별 한일 경합도 하락…"엔저 두렵지 않다"

실제 국내 주요기업은 업종별로 최근 엔화 가치 하락을 예의 주시 중이지만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표적인 ‘엔저’ 피해 업종으로 인식됐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자동차, 부품 등도 품목과 시장의 다변화를 시도하면서 ‘엔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가격보다 품질 위주의 시장이 형성돼 과거와 달리 엔저 영향은 크지 않다"면서 "다만 통상적인 수준에서 환율 상황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일본과의 경쟁 대신, 오히려 정제유의 일본 수출이 적잖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러나 원유와 정제유 특성상 국제 결제기준으로 '달러'가 통용되는 만큼, 엔저 이슈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자동차 역시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일본차와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고 있다. 일본 토요타 정도를 의식할 뿐, 나머지 일본차는 이제 경쟁상대가 못 된다는 게 완성차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나아가 기계 분야는 오히려 엔저에 따른 반사이익도 기대 중이다. 일본 회계연도(3월)가 끝나자 환율이 유리한 현재 시점을 고려해 일본산 핵심 기계부품을 선(先)주문하고 나중에 받는 방식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최근 한국 기업들의 주요 품목 수출 경합도는 일본보다는 오히려 중국이나 대만과의 경합도가 높아지고 있다”라며 “여전히 엔저 여파가 주요기업에 일부 영향을 줄 수는 있겠으나 과거보다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 경합도가 과거보다는 다소 낮아졌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인 자동차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 가운데 일본과의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의 경우, 환율에 따른 업황 변화를 지속해서 체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국제 외환시장에서 한때 대표적인 안전자산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던 엔화의 위상은 장기적으로 약화할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중론이다.

이날 기획재정부 관계자 역시 본지와의 통화에서 "과거 엔화 가치가 떨어졌던 때에도 우리나라 경제에 큰 영향은 없었고, 이미 경험도 있다"며 "최근 수출은 품질 등 비가격 경쟁이 중요시되고 있어 경쟁력에 대한 영향이 과거보다는 없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크게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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