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과열됐던 공모주 투자 이제 냉정을 되찾을 때

입력 2022-02-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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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흠 회계사

LG에너지솔루션의 뒤를 잇는 대어급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철회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뜨거웠던 공모주 시장이 다시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회사는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했다고 철회 이유를 공시했다. 그러나 현대엔지니어링의 증권신고서에서 상장 방식과 공모가액 산정 근거를 살펴보면 왜 실패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기업이 상장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가 신주발행이고 두 번째가 구주매출이다. 신주발행은 말 그대로 새롭게 주식을 발행한다는 의미이다. 투자자가 대금을 납입하면 회사는 새 주식을 발행해서 투자자에게 지급한다. 회사는 자금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 돈으로 사업을 더 크게 벌이든가 새로운 사업을 해서 이익 창출에 힘쓸 것이다. 그러면 기업가치, 즉, 주가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구주매출은 기존 주주가 갖고 있던 주식을 내놓는 방식을 의미한다. 즉, 투자금은 회사로 들어오지 않고 기존 주주에게 가고 기존 주주는 갖고 있는 주식을 공모주 청약에 참여한 주주에게 준다. 회사는 사업을 위해 투자금을 받지 않았으니 기존과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다. 대개 구주주들이 투자금을 회수(exit)하기 위해 구주매출을 진행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번에 상장을 통해 많은 구주매출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총 1600만 주 공모 규모에서 1200만 주를 구주매출로 진행하고 400만 주만 신주발행 예정이었다. 즉, 상장을 통해 회사로 유입되는 돈은 공모가격 밴드 상단 기준으로 3000억 원 정도이고 나머지 9000억 원 이상은 대주주에게 흘러가는 식이다. 이 1200만 주 중 670만 주가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 부자의 지분으로 가장 많았으니 여론은 더 좋지 못했다. 결국 최대주주 일가의 투자금 회수를 위한 상장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주주들도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권리가 있지만 새롭게 주주로 참여하는 공모주 주주 입장에서는 투자의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다. 기업이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성장이 끝났다는 신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슈는 공모가액 산정 근거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유사기업으로 국내의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대우건설 외에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의 플랜트, 자산관리 기업들을 다수 포함시켰다. 국내 기업들의 EV/EBITDA배수는 평균 5.1인데 외국기업들의 평균 배수가 13.8이나 된다. 결국 공모가액 산정을 위해 국내외 유사기업 평균 EV/EBITDA배수인 11.6배를 적용했다. 해외 기업들을 포함하면서 공모가액을 무리하게 올려서 구주주들이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도록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사실 현대엔지니어링이나 같은 계열사인 현대건설이나 사업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건설 대장주인 현대건설은 3분기까지 약 12조9000억 원 매출에 5622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었는데 시가총액은 5조 원 내외에서 형성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같은 기간 동안 5조4000억 원의 매출액과 3142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는데 공모가 밴드 상단 기준 시가총액은 6조 원이 넘는다. 외형은 현대건설보다 작은데 기업가치는 더 높게 쳐 주기를 원하니 시장에서 공모가액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동성 파티가 끝나 가면서 공모주 시장 역시 냉정함을 찾아 가고 있다. 최근에 공모주 시장을 보면 이제 기관투자자들도 옥석 가리기에 나선 걸로 보인다.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들의 공모주 청약에는 여전히 많은 기관투자자가 몰리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면 여지없이 참여 건수가 뚝뚝 떨어져 버린다. 그러다 보니 공모가액도 밴드 하단이나 하단 밑으로 내려가기 일쑤다. 앞으로 그런 기업들은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처럼 야심 차게 상장을 준비했다가 시장의 싸늘한 반응에 포기하는 기업들도 속출할 것이다.

개인투자자들도 이제 공모주는 기본 따상이라는 대박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필자가 15년 넘게 공모주에 투자하면서 이렇게 상장 후 따상, 따상상이 속출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최근 2년간 예외적으로 특이했다. 그렇다고 주식시장을 떠나라는 의미는 아니다. 계속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내공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옥석 가리기를 잘할 수 있다. 이제 투자 공부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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