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인플레이션 무대응, ECB의 홀로서기?

입력 2022-02-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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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택 경제칼럼니스트

코로나 위기가 발생하자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은 초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침체 국면으로 빠지는 경제를 구해냈다. 이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이 국제적 공조를 통해 통화완화 정책을 긴급하게 시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회복과 인플레이션이 각 나라별로 차별적으로 진행되면서 양적완화 정책의 출구전략도 미국과 유럽에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연준 등 많은 나라들이 인플레이션에 대비하여 조기에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하고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고 천명하는 마당에, 오직 ECB만 유럽연합(EU)에서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는 유로 국가들의 형편을 고려하여 기준금리의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경제전문가는 ECB가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1월에 들어와서는 시장 참가자들도 ECB의 완화적 금융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높은 인플레이션에 직면하여 유동성 회수를 강화하고 이전의 위기 대응 정책을 폐기하고 있다. 그러나 ECB는 코로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지금까지 시행해 왔던 통화완화 정책을 지속할 것이며, 제로금리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정책으로 전환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ECB는 유럽의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으며, 중기적으로 물가 목표치가 달성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자산 매입 속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여 올해 3월 말까지 코로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팬데믹긴급프로그램(PEPP)을 계획대로 종료할 것이다. 물가가 목표치인 2%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통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때까지 EU 회원국의 국채에 약 1조8500억 유로를 투자할 것이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은 금융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

현재 ECB는 매달 200억 유로에 달하는 자산매입프로그램(APP)과 PEPP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지난 1월 중순에 내린 결정에 따르면, ECB는 2010년 및 2011년에 발생한 유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채택된 APP를 오히려 확대하고자 한다. APP는 채권 매입 금액이 2분기에는 400억 유로, 3분기에는 300억 유로로 증액된다. 올해 10월이 되어서야 채권 매입 금액은 비로소 월 200억 유로로 다시 감소한다고 한다. APP는 PEPP와는 별개로 총 3300억 유로의 채권을 매입하게 된다. 게다가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경우 그 채권만큼 재투자하게 된다. 물론 채권 매입에 따른 유동성 공급은 코로나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와 비교하면 훨씬 적지만,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금액이다.

한편, 미 연준은 3월 이내에 채권매입프로그램을 종료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6.8% 물가상승률과 경기 상승을 근거로 양적완화 정책을 더 이상 지속할 필요가 없고, 현재 0~0.25%인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고 한다. 금융시장 전망에 따르면, 연준이 3번 내지 5번에 걸쳐 금리를 인상하여 올해 말쯤에는 기준금리가 1% 이상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영란은행도 지난해 말에 0.1%인 기준금리를 0.25%로 인상하였다. 캐나다, 호주 그리고 한국도 금리인상에 선도적으로 동참하면서 완화적 통화정책의 고삐를 서서히 죄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ECB는 이러한 국제적 추세를 무시하고 홀로서기를 통해 외로운 길을 가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 들어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유럽에서 급속하게 확산됨에 따라 통화완화 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피력하고, 특히 올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데에는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 언론계에서는 그녀를 비꼬아서 ‘마담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러한 별명이 양적완화를 지속하며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음으로써 물가상승을 용인하려는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제로금리 정책은 인플레이션 기대치에 부응하는 것일까?

최근 발표한 ECB의 인플레이션 예측치를 살펴보자. 지난해 3분기에 예측한 2021년도 인플레이션율은 1.7%였다. 그러나 불과 3개월이 지나기도 전인 2021년 연말에 예측한 인플레이션율은 이미 이전 예측치의 두 배인 3.2%에 달했다. 또한 2023년과 2024년의 인플레이션율은 각각 1.8%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가지 의견이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격렬하게 대립한다. 주로 남유럽국가를 대표하는 비둘기파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여전히 통화완화적 정책을 주장하는 반면, 북유럽국가를 대표하는 매파는 물가상승에 미리부터 통화긴축정책으로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대립이 외부세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비둘기파는 금리를 조급하게 올리는 경우 부채가 많은 회원국들의 채무 부담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살아나려는 투자 증대에 따른 경기 회복의 싹을 자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매파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대응하지 않는 것은 나중에 더 큰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여 회원국 내 소득불평등과 거시경제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외견상 비둘기파가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결국 ECB는 미국, 영국 등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대응정책과는 별개로, 현재 제로금리 정책의 고수라는 고독한, 그러나 독립적인 결정을 내렸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의견이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극명하게 갈렸던 것처럼, ECB의 홀로서기는 앞으로 EU 회원국 국민 간 많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일본의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는 데뷔작 ‘키친’에서 “정말 홀로서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뭘 기르는 게 좋아.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게 되거든”이라고 했다. 이제 ECB는 홀로서기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길러서(?) 자신의 정책적 한계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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