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를 짓눌러온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공포가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원자재 가격과 임금 상승, 공급망 병목이 주된 원인이다.
물가 상승 압력이 길어질수록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기준금리 인상을 재촉해 주식투자 위축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공격’보다 ‘방어’에 치중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또 음식료, 의류, 반도체 업종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는 2일(현지시간) 유로존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 예비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1%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통계를 집계한 1997년 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4.9%), 12월(5.0%)에 이어 석 달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기도 하다. CNBC는 “이코노미스트 예상치(4.3%)를 크게 웃돌았다”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압력이 더욱 강해졌다”라고 진단했다.
물가 상승은 비단 유로존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CPI는 전년 같은 달 대비 7.0% 상승했다. 이는 1982년 이후 40년 만의 최고치다.
국제유가는 7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2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배럴당 88.26달러에 장을 마감해 90달러 선을 눈앞에 뒀다. 여기에 고삐가 풀린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붕괴는 인플레이션 속도에 기름을 붓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당분간 물가 상승이 계속되고 더 올라갈 위험도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물가가 선진국에서 3.9%,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에서 5.9%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인플레이션이 올해에도 이어지다가 내년이 되어서야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세계 이코노미스트들도 올해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 봤다. 로이터통신이 지난달 4일부터 26일까지 세계 46개국 이코노미스트 500여 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상당수는 인플레이션이 당분간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특히 올해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 188명 중 38%가 인플레이션이라고 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이(34%)보다 큰 타격이 될 것이란 응답이 나온 것이다.
이 밖에 각국 중앙은행의 조기 긴축 움직임(22%), 자산 가격 조정(4%) 등을 주요 변수로 꼽았다.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4.5%에서 4.3%로 낮춰 잡았다.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에 따른 부담이 원인이다.
증권가에선 인플레이션의 전망과 향후 전략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증시가 계속 흔들리는 가운데 가격 결정력을 지난 종목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당장 물가 상승 압력이 둔화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미국 고용시장과 물류 대란이 정상화하기 전까지 임금, 기업의 비용 상승 압력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지금처럼 임금 상승률이 높게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음식료, 의류 등의 업종이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 연구원은 지난 2년간 가격 인상이 비교적 적었던 공공 운송요금, 의류, 약품, 레저 관련 업종과 최악의 시기를 보낸 호텔레저, 향공 업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금 상승률이 높아지는 만큼 기업들의 로봇 투자도 확대할 수 있다고 봤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을 비롯해 ECB, 영국 중앙은행(BOE) 등 주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응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면서 “연간 이익이 늘고 적자가 없었으며 이익 변동성이 크지 않은 종목인 반도체, 하드웨어, 금융, 통신 관련주를 지켜보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