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달부터 자산매입을 줄이는 테이퍼링에 들어간다. 우선 11월과 12월에 국채 100억 달러와 주택저당증권(MBS) 50억 달러 등 150억 달러씩 매입 규모를 축소키로 했다. 내년에는 경제전망 변화에 따라 테이퍼링 속도가 조절된다.
작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의 양적완화를 20개월 만에 멈추고 돈줄을 조이는 방향 전환에 나선 것이다. Fed는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경기 방어를 위해 매달 1200억 달러(국채 800억 달러·MBS 400억 달러)의 채권을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다만 제롬 파월 Fed 의장은 “테이퍼링 결정이 금리인상의 직접적 신호는 아니다”며, 시장이 우려해온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과는 선을 그었다.
여러 차례 예고된 테이퍼링이고, 당분간 ‘제로 금리’ 유지에 무게를 둔 Fed의 완화적 입장으로 미국과 국제 금융시장은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4일 국내 주식시장 코스피지수도 전날보다 7.51포인트(0.25%) 오른 2983.22, 원·달러 환율은 1.0원 상승한 1182.6원에 마감하는 등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2013년 갑작스런 테이퍼링 발표로 신흥국 통화가치와 주가가 급락하는 ‘긴축발작’을 일으킨 것과는 다르다.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도 예상에 부합한 수준의 조치라며, 국내 금융시장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테이퍼링은 지금까지의 ‘유동성 잔치’가 끝나는 금융시장 환경의 중대한 변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부터 세계 각국은 앞뒤 가리지 않고 막대한 재정 투입과 금융 완화로 돈을 풀어 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가면서 통화정책 정상화에 시동이 걸렸다. 테이퍼링은 긴축의 신호다. 일정 기간 뒤 기준금리 인상은 예정된 수순이다. 미국의 통화정책은 국제 금융·자산시장의 핵심 변수다. 무엇보다 Fed 전망과 달리 인플레가 장기화하면 금리인상이 빨라질 수 있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긴축은 채권금리와 달러 가치를 올린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나 신흥국에는 발등의 불이다. 외국인들이 돈을 빼가고, 통화가치와 주가를 떨어뜨려 금융시장 불안을 키우면서 경기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한은이 8월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데 이어, 이달 추가인상을 기정사실화한 것도 가계부채와 물가 문제에 더해 이 같은 우려가 많이 작용했다.
주요국들의 통화정책 방향 전환도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유럽이 조만간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시장은 전망한다. 글로벌 인플레가 금리인상을 압박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울 최대 리스크다. 경기까지 둔화하고 있다. 근본적인 시장여건 변화에 경제정책과 금융 당국이 어느 때보다 긴장감을 갖고 대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