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독·사진 작가 정체성 공존…"사물에서 표정 발견했다"
1일 부산에서 만난 박 감독은 "영화인이지만 사진작가로서의 정체성은 따로 있다"며 "집이나 사무실 어디에서나 사진을 찍어왔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선 영화 '스토커'를 촬영하던 2013년부터 최근까지 그가 찍은 사진 30여 점을 선보인다.
"사실 이름을 바꿔서 전시를 열어볼까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화와 사진은 완전히 분리된 건 아니더라고요. 제 내면엔 사진과 영화가 공존해요. 다르면서도 연결된 두 세계죠."
박 감독은 일반적으로 사람에게만 쓰이는 표현인 '표정'을 사물에서도 발견했다. 박 감독의 사진들에서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거나 신체 일부만 담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페인의 한 주유소에 갔는데, 주유기 세 대가 떨어져 있는 모습 속에서도 표정을 떠올렸어요. 변산반도 바위도 그래요.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난 남자의 옆얼굴이 보이지 않나요. 풍경, 무생물, 사물에서도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박 감독은 "영화에서 인물을 많이 다루다 보니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들의 감정을 갖고 씨름하는 일을 평생 해왔다"며 "사진에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을 통해선 무생물 속에서 생명력을 찾아내고, 무생물과 자신이 만났을 때 생기는 스스로 감정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박 감독은 "무속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영화 촬영 현장, 집, 사무실 등 그가 활동하는 모든 공간을 관찰하다 보면, 풍경과 자연스레 교감을 하게 되는데 이때 자연스레 발견되는 표정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박 감독은 "사물과 나와의 일대일 대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사진을 찍을 땐 직관보다 '수학적 계산'에 집중하는 편이다. 사진은 반대다. 어디에서 무엇을 건질 것이고, 어디에서 무언가를 조명해서 연출하겠다는 디테일이 완전히 사라진다. 카메라 한 대를 메고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들으며 두리번거리면서 걸어 다니는 박 감독의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그는 이를 "찰나의 만남"이라며 "찍는 순간엔 그렇게 본능적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본 관객이 직접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세밀한 질감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감독이다. 여기에선 사진과 공통점이 있다. 발리의 해변에서 본 바위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표현했던 것도 보는 이들이 질감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박 감독은 스스로 내성적이고 조용한 걸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몇십억, 몇백억씩 들어가는 예산의 영화를 찍을 때 한없이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여럿이 함께할 때 손발이 안 맞아 고민이 생길 때 그를 버티게 해줬던 건 혼자 오롯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도록 해준 카메라였다.
"영화와 다른 재료를 사용하고, 저 스스로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관객이 볼 때는 거기서 거기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라는 창작자도 한계가 있겠지만, 매체 자체의 속성 때문에 차이가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사진은 영화와 달리 시간상으로 한순간이고, 공간적으로 정해진 프레임밖에 없지만, 저는 여기서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