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 사각지대 놓인 위반건축물 세입자들

입력 2021-09-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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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사고 땐 보증금 회수 어려워…세입자 보험 가입 서류부터 '퇴짜'
전문가 "임대보증보험 의무화, 집 주인·세입자 퇴로 열어줘야"

▲서울 강동구 일대 저층 주거지. (박종화 기자 pbell@)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H빌라에 전세로 사는 한모 씨는 지난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임대 보증금 보증(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는 못할 때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주는 상품) 가입을 문의했다.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등록임대주택(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민간임대주택)인 한 씨의 전셋집은 임대 보증금 보증 의무 가입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HUG 측은 한 씨가 사는 집은 임대 보증금 보증에 가입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한 씨의 전셋집이 위반건축물(건축법 등을 위반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거실을 불법 증축한 게 화근이 됐다. 한 씨는 집값이 떨어지면 자칫 깡통전세(전셋값이 집값과 비싸거나 집값을 넘어서는 주택) 세입자가 될까 걱정이 많다.

임대 보증금 보증 가입 의무화됐는데 위반건축물은 '퇴짜'

위반건축물 세입자들이 임대 보증금 보증 사각지대에 놓였다. 임대 보증금 보증 의무 가입 대상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이들은 그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부터 세입자 보호 강화를 위해 모든 등록임대주택 임대사업자는 임대 보증금 보증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했다. 임대 보증금 보증에 가입하지 않은 등록임대주택 임대사업자는 2년 이하 징역형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한 씨처럼 임대 보증금 보증에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HUG는 위반건축물은 임대 보증금 보증 가입 서류조차 안 받아준다. HUG 관계자는 "보증 사고가 발생하면 그 집을 경매에 붙여 대신 갚아준 보증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위반건축물은 낙찰률이 낮아 회수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원상 복구·임대사업자 말소 모두 세입자에겐 '주거 불안' 부메랑

이런 상황에서 위반건축물 소유주가 취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법 위반 사항을 시정하는 것이다. 위반 사항을 바로잡아 건축물대장에서 '위반건축물' 꼬리표를 떼면 임대 보증금 보증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시정 공사가 진행될 동안 세입자는 집을 비워줘야 한다.

다른 한 가지 길은 임대사업자 등록을 말소해 임대 보증금 보증 가입 의무를 피하는 것이다. 최근 국토부는 위반건축물은 등록임대주택에서 직권으로 말소할 수 있다고 지자체에 안내했다. 임대사업자들은 "위반건축물까지 끌어들여 등록임대주택 확보 실적을 올릴 땐 언제고 이제 와 등록을 말소하려 한다"고 반발한다. 지자체도 직권 말소에 소극적이다. 세입자가 무제한으로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등록임대주택이 사라지면 지역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두 가지 방안 모두 세입자 주거를 불안하게 만드는 셈이다.

전국 위반건축물 12만 채 넘어

위반건축물 소유주에겐 선택지라도 있지만, 그 세입자에겐 다른 대안도 없다. 세입자가 할 수 있는 건 임대 기간이 끝나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무사히 돌려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올해 HUG에 접수된 임대 보증금 보증사고 규모가 7월까지 누적 3066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자칫 '희망 고문'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매년 적발되는 위반건축물 수로 볼 때 일부 집주인-세입자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전국의 위반건축물 수는 올 2월 기준 12만 채가 넘는다. 서울에서만 4만7587채가 위반건축물로 적발됐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 회장은 "국토부가 무리하게 임대 보증금 보증 가입을 의무화하다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진퇴양난 상황이 됐다"며 "무책임하게 직권 말소를 권고할 게 아니라 퇴로를 열어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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