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머니무브] 해외 연기금은 왜 한국 주식을 팔았을까?

입력 2021-09-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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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리서치 대표

지난 7월 말부터 시작되었던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매도 원인이 대략적으로나마 밝혀진 것 같다. 최근 유안타증권의 김후정 애널리스트가 쓴 흥미로운 보고서 ‘외국인 매도와 자산배분(2021.8.24)’을 보면, 한국 관련 해외 상장지수펀드(ETF)에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었음에도 외국인의 매도가 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최근의 외국인 순매도 공세는 펀드 관련 자금 흐름 변동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연기금의 행동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글로벌 연기금은 왜 한국 주식에 왜 투자하나?

일단 글로벌 연기금이 한국 주식 비중을 줄인 이유를 살펴보기에 앞서, 왜 한국 주식을 사들였는지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배당수익률, 그리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야생마 같은 한국 주식시장에 글로벌 연기금이 투자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달러약세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한국 주식시장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헤지 수단이란, 어떤 위험이 발생할 때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 그래프는 미국 달러가치와 한국 종합주가지수(코스피)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달러 약세 국면마다 코스피가 급등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달러가 강세로 반전할 때에는 어김없이 코스피의 하락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결국 한국이 ‘소규모 개방경제’이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식 및 외환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 된 데다, 경제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커서 글로벌 경제의 변동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따라서 글로벌 연기금 입장에서 한국 주식시장은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각된다.

글로벌 연기금 입장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주식이나 채권 그리고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달러가 약세를 보일 때마다 평가손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런 고민을 하는 연기금 입장에서 한국 및 동아시아 주식시장은 아주 적합한 헤지 수단이 된다. 워낙 변동성이 크기에 조금만 투자해 놓아도 달러 약세 국면에 수익성이 아주 큰데다, 워낙 거래대금이 많기에 달러가 강세로 돌아선다 싶을 때에는 신속하게 매도할 수 있는 장점도 부각된다. 따라서 최근 글로벌 연기금이 한국 주식을 매도한 가장 직접적 이유는 달러 강세라 할 수 있다. ‘헤지 목적’을 달성한 만큼, 한국 주식을 굳이 대량 보유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러강세 뿐만 아니라 리밸런싱도 매도의 원인으로 작용한 듯

글로벌 연기금이 한국 주식을 매도하는 이유가 ‘달러 강세’ 때문만은 아니다. 자산 배분 리밸런싱 수요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리밸런싱이란, 목표 자산의 배분 비율을 유지하기 위한 매매를 뜻한다.

예를 들어 A 연기금이 자산의 절반을 달러자산에,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원화에 투자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2020년 3월처럼, 달러의 초강세가 출현하면서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300원으로 치솟았다면? 아마 A 연기금의 자산 배분 비율은 미 달러화 60, 원화 40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때 리밸런싱이 시작된다. 미국 달러 자산의 10% 포인트를 매도한 다음, 이를 원화 자산 매입에 투입함으로써 다시 50대 50의 배분 비율을 맞추는 것이 리밸런싱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민연금을 비롯한 여러 연기금은 폭락한 한국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입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 상황이 출현했다. 2020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탄력적인 주가 상승 결과, 한국 원화 자산의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코스피가 3000포인트를 돌파하며 2020년 3월의 저점에서 2배 이상 상승한 데다,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마저 1100원대로 떨어진 만큼, 이제 반대로 방향의 리밸런싱이 시작될 가능성이 충분해졌다. 어차피 글로벌 연기금 입장에서, 한국 주식을 매입한 이유는 ‘헤지’ 목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고 또 한국증시에 투자한 성과가 극적으로 개선되었기에, 글로벌 연기금 입장에서 리밸런싱 목적의 한국 주식 매도를 단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 공세는 앞으로 계속될까?

이상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글로벌 연기금의 행보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먼저 지난 주말 열렸던 잭슨홀 컨퍼런스에서 파월 연준 의장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계속 시행할 것임을 강하게 밝힌 바 있다. 최근 미 달러의 강세가 출현했던 이유가 일부 연준 멤버들이 긴축적인 통화정책 시행의 필요성을 강조한 데 있었음을 감안할 때, 잭슨홀 컨퍼런스 이후 달러 강세 현상이 진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리밸런싱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주식가격이 고점에서 크게 하락하지 않았기에 전체 자산 내에 한국 주식의 비중을 여전히 ‘목표 수준’보다 높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위 그래프를 보면, 코스피가 선진국시장(Developed Market·DM)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성과를 지속 중이다. DM 증시는 크게 보아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으로 구성되는데 미국 증시만 탄력적으로 상승할 뿐 다른 선진국 증시는 부진하기에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글로벌 연기금의 한국 주식 매도 공세는 달러 강세 우려가 완화되며 진정될 가능성이 높으나, 리밸런싱 목적의 일부 매도는 당분간 더 출회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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