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는 공정지도] 생활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불공정한 ‘서울 입장료’

입력 2021-08-11 05:00수정 2021-08-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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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향하는 지방 청년들

지방엔 일자리 턱없이 부족

공공기관 이전도 쉽지 않아

학원ㆍ면접 등 준비부터 부담

취업해도 집값 막막하지만

'기회의 땅' 받아들일 수밖에

전남 완도 출신 차민종(가명·28세) 씨가 직장을 찾아 서울에 올라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엔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없어서다. 수도권의 일자리 부족에도 청년층(15~29)이 수도권으로 쏠리는 가장 큰 원인은 지역 간 ‘일자리 질’의 격차다. 일자리를 얻기는 어렵지만, 얻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수준이 보장된다.

10일 통계청 ‘e-나라지표’ 분석 결과, 지난해 17개 시·도의 상용직 임금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은 344만7000원이었다. 1위 서울은 373만6000원인 반면 17위 제주는 272만7000원이었다. 격차는 2011년 1.22배에서 지난해 1.37배로 벌어졌다. 광역시 중에선 대구·광주의 월평균 임금이 300만 원을 밑돌았다. 도 지역에선 경기의 월평균 임금이 346만7000원으로 강원·전북보다 40만 원 이상 많았다.

또 전국 시·군·구 중 고숙련-고학력-고소득 일자리가 많은 상위 지역 10곳 중 8곳이 수도권에 쏠려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9년 발간한 ‘지역의 일자리 질과 사회 경제적 불평등’ 보고서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 252개 시·군·구별로 좋은 일자리 분포를 분석한 결과 일자리 질 지수가 상위 지역으로 분포된 곳은 총 39개였다. 이 중 32개(82%)가 서울 서초·수원 장안·성남 분당·과천 등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몰려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조사한 ‘30~50클럽 국가의 수도권 집중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도는 GDP(국내총생산)의 51.8%로 조사 대상 국가 중 1위다. 201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통계포털 분석 결과에서도 2020년 2월 기준으로 전체 취업자의 절반(49.94%)이 수도권에 있다. 지방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서울로 상경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권오혁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방에 좋은 일자리가 없으니 수도권 행렬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서울에 있는 청년들은 기회가 많아 취업에 편리하지만, 지방 청년들은 수도권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취업에 불리하다”고 말했다.

◇서울 ‘입장료’ 지방 청년에겐 큰 부담

지방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상경하고 있지만 주거비 지출 부담이 취업을 준비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실시한 ‘청년층 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에 따르면 전국 청년층의 월평균 주거비는 25만2000원 수준이다. 반면 서울시가 2020년 ‘서울 청년월세지원’ 지원자(2만2405명)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들의 월평균 주거비는 43만3000원(월세 37만3000원/관리비 6만 원)으로 나타났다. 전국 청년층 평균 주거비에 비해 20만 원 정도 많다.

주거비 유무에 따라 청년들의 생활비 부담은 크게 달라진다. 서울 토박이 송민규(가명·29세) 씨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한 달 기준) 식비 20만 원에 책값 15만 원 정도밖에 안 든다”며 “사실 그렇게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송 씨의 한 달 생활비는 지방에서 올라와 주거비를 부담해야 하는 차 씨 생활비의 20% 수준이다.

◇“정작 수도권 사람들은 무관심”… 보여주기식 정책만

더불어민주당이 지방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을 내걸었지만, 현실 정치 생태계에서 작동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투데이가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 공약을 전수 분석한 결과, 당시 주요 정당들은 지방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지방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상경하는 만큼, 수도권에 여전히 남아 있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추가로 이전하는 게 주요 해결방안이었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 당시에도 수도권에 여전히 남아 있는 122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추가 이전할 것을 약속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도 2017년 대선 당시 지역 공공기관의 경우 지역 인재를 30% 이상 의무적으로 고용할 것을 약속했다. 정의당 역시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에서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을 추진하고 지역 대학과 연계해 인재 채용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차 공공기관 이전(153개) 완료 이후, 현 정부 들어 추가로 지방에 이전된 공공기관은 없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2019년 1차 이전 이후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며 “2차 이전과 관련해 정부에서 확정되거나 논의 중인 것은 없다”고 답했다.

공공기관 추가 이전을 통해 불공정한 일자리 불균형을 해결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선뜻 지방행을 택하는 공공기관이 없는 탓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지역산업ㆍ일자리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강남호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도권이 이미 다수결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정책을 하겠나”며 “지방을 위한다는 정책들은 모두 임기응변식”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이민원 광주대 교수는 “지금까지 진행이 안 되는 것만 봐도 정부의 적극적인 의사가 없다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은 왜 못 했는지 이유를 밝히고, 새로운 공약을 내는 게 옳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도권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며 “이번 정부 내에는 (공공기관 2차 이전이) 어두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엔 다시 ‘서울’ 지방 청년에겐 여전히 기회의 땅

정치권에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꺼내 든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선택은 불공정에 ‘순응하기’다.

전북 전주 출신 황진현(27세) 씨는 “일자리와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돼 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538만 원. 공인회계사를 준비하는 황 씨가 2018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약 1년 반 동안 서울서 취업을 준비하며 쓴 비용이다. 황 씨는 대신 유명 대형 학원의 현장강의, 모의시험, 스터디 등 지방에서는 얻을 수 없는 양질의 인프라를 얻었다.

황 씨처럼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인구는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2020년 통계청이 실시한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과 향후 인구전망’에 따르면, 직업으로 인한 순이동은 2016년 1만6000명을 기점으로 △2017년 3만1000명 △2018년 5만3000명 △2019년 6만4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끝이 없다. 전북 익산 출신 박진영(27세) 씨는 대형 호텔 셰프가 되기 위해 곧 상경할 예정이다. 박 씨는 서울을 기회의 땅이라고 믿고 있다.

박 씨는 “익산에는 호텔이 세 개밖에 없는데, 서울은 조금만 가도 대형 호텔이 있다”며 “솔직히 우리나라가 서울 중심주의인 건 인정할 수밖에 없고, 개인이 바꿀 수도 없다”고 말했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는 “(지방 청년들이) 꿈이 있으면 서울로 올라가게끔 만들어진 구조이고, 서울 중심주의를 통해 부동산 등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고칠 생각을 안 한다”며 “지방이 완전히 피폐해져야 뭔가를 하려고 할 텐데, 그때 가면 완전히 늦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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