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정년연장=기득권 연장 안돼, 연공서열부터 바꿔야"

입력 2021-08-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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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갈등 풀 해법은

임금 체계, 성과 중심으로 개선
업종ㆍ개인 능력별 유연화 필요
고령층 일할 수 있는 여건 마련해야

▲7월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시민이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최근 65세 이상 고령층 인구가 처음으로 800만 명을 넘기는 등 고령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많이 제시됐던 해법 중 하나는 ‘정년 연장’ 카드다.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에 대응할 수 있으면서도 퇴직연령과 연금 수급연령의 괴리를 메울 수 있어서다.

정부는 쉽사리 정년 연장 카드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정년 60세를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청년층의 취업난이 극심해 이를 공론화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 2030 세대를 위한 대책이나 공약이 쏟아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정년 연장 제도 자체의 필요성은 있다고 봤다. 다만, 연공서열 등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선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청년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년 연장에 따른 대표적인 부작용은 청년 일자리 감소다. 지난해 5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 연장 수혜자가 1명 늘어나면 청년 고용이 0.2명씩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 5명이 정년 연장 혜택을 보면 청년 1명이 고용에서 밀려나는 셈이다.

당시 보고서를 발간한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로 민간 사업체에서 고령층(55~60세) 일자리는 증가한 반면,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효과는 대규모 또는 기존 정년이 낮았던 사업체에 집중됐다.

한 연구위원은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장기적으로는 정년 연장이 필요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청년 일자리 감소 등 단기적인 충격이 상당히 크게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공서열적인 임금 체계나 근로 문화를 그대로 두고 정년만 연장한다면 기업에 부담이 발생하고, 누군가가 비용을 지급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정년 연장은 필요하지만, 정년 연장이 ‘기득권 연장’이 되면 안 된다”며 “현재 호봉제로 돼 있는 임금 체계를 성과나 직무급 중심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정년 연장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청년층 일자리는 지금보다 악화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정년을 일률적으로 연장하기보다도 고령층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즉, 제도로 정년을 강제하기보다도 고령층이 자연스럽게 생산가능인구로 유입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년 연장을 통해 생산인구의 절대적인 양을 늘리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늘릴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정년 연장 같은 ‘연령규범’은 현재 인구구조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약화돼야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연령에 맞춰 취업을 하거나 은퇴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유연화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며 “오히려 정년 연장을 통해 경직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년 연장을 하더라도 업종별로 유연화가 필요하다”며 “웬만한 나라들은 65세가 정년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정년이 빠른 편이다. 점진적으로 정년 확대를 하고, 노동 환경이나 개인의 노동 능력에 따라서 유연한 연장 방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연구위원은 “제도적으로 정년을 일률적으로 올리게 되면 오히려 연공서열 등으로 인해 최상층 근로자들의 소득이 늘어나는 등 소득 분배에 역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정년연장·재고용 등 개별 기업의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령자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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