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박정원 "꿈이 없는 게 아니라 찾고 있는 것 아닐까요?"

입력 2021-07-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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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탈출기'는 우리 이야기…비로소 나를 들여다봤다"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에서 봉수 역을 맡은 박정원 배우가 1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우리는 모두 자기 앞에 놓인 삶을 살아간다. 보이는 형태는 다르다. 그 모습만으로 치열함을 섣불리 재단해선 안 된다. 누군가의 삶을 깎아내리거나 함부로 충고해서는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인도 탈출기' 봉수가 그렇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지만 되는 일 없는 취업 준비생이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봉수처럼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도 없다. 좋아하는 만화도 그에겐 사치일 뿐이다. 서울 대학로에서 봉수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배우 박정원을 만났다.

"단순히 취업준비생으로 역할이 표현되지만 모든 분야에 있는 많은 사람이 봉수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거나 겪고 계실 거예요. 저 역시 서류를 넣었던 오디션들을 다 떨어진 시절, 작품 없이 무작정 쉬었던 경험이 있거든요.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뭐든지 열심히 했어요. 열정이 가득했던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봉수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에서 봉수 역을 맡은 박정원 배우가 1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연출 윤상원, 제작 섬으로 간 나비)는 갓 서른을 넘긴 취업 준비생 봉수와 동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수아가 연극 공모전 상금 500만 원을 타기 위해 지하 단칸방에서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무대에 펼쳐내는 작품이다. 세 명의 상상이 펼쳐지는 곳은 다름 아닌 '무인도'다. 특히 윤상원 연출의 자전적 이야기로 주목을 받았다.

"작가님, 연출님과 연습 과정에서 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극 중 수아가 '저는 꿈이 없어요'라고 말하잖아요. 연출님은 실제로 여자친구한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대요. 우리는 모두 어렸을 때 당연한 듯 '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여요. 그리고 꿈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헛사는 사람으로 보죠. 하지만 수아가 꿈이 없다고 했을 때 봉수가 '꿈이 없는 게 아니라 찾고 있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해요.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한 방에 해소해주는 장면이라고 봤어요."

박정원은 어릴 적부터 좋은 무대에서 좋은 사람들과 연기를 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지금 '복에 겨울 정도'로 꾸준히 무대 위에 서고 있다. 그의 고민은 여기서 찾아온다. 수많은 인물의 삶을 살아가는 그는 요즘 '박정원'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에서 봉수 역을 맡은 박정원 배우가 1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봉수의 말이 별말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생각할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돼요. 어느 순간 제 꿈이 없어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꿈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거든요. 하지만 봉수의 말을 되뇔수록 다른 꿈을 찾을 수 있겠단 희망이 생겨요. 무대에서 연기하고 싶다던 단순한 꿈이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갖게 됐고요. 그러면서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죠. 막연했던 꿈이라는 덩어리 안에서 자잘 자잘한 것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됐어요."

그에게도 좌절은 있었다. 박정원은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매 순간 좌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좌절감의 크기 역시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많은 사람이 '나는 더 아픈 걸 겪어봤어'라는 말을 쉽게 하잖아요. 하지만 남의 아픔을 우리가 뭐가 아프냐고 말할 순 없는 거 같아요. 저 역시 좌절하는 순간이 매번 다르게 오거든요. 오디션에 계속 떨어졌을 땐 어느 순간 좌절조차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했고요."

'무인도 탈출기'는 박정원에게도 힐링의 시간을 마련해줬다. 놓치고 있던 '인간 박정원'을 다시 생각하고 있는 요즘이다.

"배우라는 직업은 박정원의 삶보다 봉수, 동현이, 수아의 삶을 대신 살아주잖아요. 공연을 보러 와주신 분들께 만족감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연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알 수 없는 고요함과 적막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외로워져요. 점점 데미지가 쌓이면서, 제가 잘해내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그 빈도수가 높아지면서 여러 가지 캐릭터를 표현할 때 한계에 부딪히는 것 같단 생각도 하게 됐죠. '무인도 탈출기'는 열심히 달려온 제게 쉼터 같은 작품이에요. 덕분에 저를 찾아가고 있죠. 어떤 작품은 형식적일 수도 있는데, '무인도 탈출기'는 현실적인 작품이에요."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에서 봉수 역을 맡은 박정원 배우가 1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박정원이 찾은 힐링 요법이 또 있다. 즉흥으로 여행을 떠난 뒤 '바멍'(바다를 보며 넋 놓는 일)을 하는 것이다. 최근에도 한참 동안 바다를 보며 "멍을 때리고 왔다"고 했다.

"'너는 힘들어'라고 저 스스로 생각해왔더라고요. 그냥 카페에 한 시간 앉아있어도 되는 걸 그조차 하지 못한 채 계속 해내야겠단 생각만으로 저를 옭아매 왔어요. 어디 놀러 가서만 저 자신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잠시라도 돌보려고 해요."

박정원은 자신의 인생을 윷놀이 속 '개걸윷'이라고 정의했다. '모'와 '도' 같은 삶을 살고 싶어도 다양한 것들에 호기심이 생겨 무언가에 깊게 꽂히지 못하는 기질이 있다. 그런 그에게 봉수처럼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탈출할 것인지, 그 안에 남을 것인지 물었다.

"봉수는 서류, 면접에서 다 떨어지는데 무인도에선 아무 생각도 않고 하고 싶었던 만화도 마음껏 그려요. 봉수는 현실이 꿈도, 희망도 없이 아무것도 아닌 채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무인도 안에선 전혀 반대였던 거죠. 그렇다고 봉수도 평생 무인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아닐 거예요. 이건 이야기고 언젠가 현관문을 나서면 현실과 부딪힐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무인도 속 삶은 1분 1초라도 소중한 '쉼'을 느낄 수 있는 기회기도 해요. 저도 1분만 무인도에 있다 오면 안 될까요?"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에서 봉수 역을 맡은 박정원 배우가 1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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