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사상 초유의 대통령 암살’, 혼돈의 아이티 어쩌나…바이든도 책임?

입력 2021-07-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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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선포·공항 폐쇄…용의자 4명 사살·2명 체포
암살 배후·동기 밝혀지진 않았으나 정국 혼란이 원인일 듯
미국, '베네수엘라에 적대적' 모이즈 편 들어 혼란 키워 비판도
후계자 찾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

▲암살당한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이 살아생전인 2019년 10월 15일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EPA연합뉴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서 대통령 암살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기근과 정국 불안이 장기간 이어지던 차에 대통령 암살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향후 극심한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 일대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세계 경찰’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아이티의 클로드 조제프 임시총리는 신원 불명의 무장 괴환이 새벽 1시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 사저에 침입해 조브넬 모이즈(53) 대통령을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영부인 마르틴 모이즈 여사도 총상을 입어 미국 마이애미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조제프 총리는 이날 2주간의 계엄령을 선포하고 포르토프랭스의 국제공항을 폐쇄했다. 그는 국민에게 침착함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국제사회는 암살을 일제히 규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끔찍한 암살에 슬픔과 충격에 빠져 있다”며 “아이티를 계속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모든 아이티 국민이 단결해 폭력을 배척해달라”고 촉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8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아이티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밤 경찰 당국은 총격전 끝에 용의자 4명을 사살하고 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 당국은 용의자들을 ‘용병’이라고 지칭했다. 조제프 총리는 암살 용의자들이 “고도로 훈련되고 중무장한 이들에 의한 매우 조직적인 공격”이었다고 지적했다.

암살 배후나 동기 등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진 않았다. 암살 용의자들이 용병일 경우 누가 이들을 고용해 암살을 사주했을지를 밝혀내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이티 자체 힘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지진을 비롯한 각종 자연재해로 인한 장기간의 빈곤에 정국 불안은 물론 아이티 전역의 치안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다.

▲아이티의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새벽 수도 포르토프랭스 사저에 난입한 괴한들에게 피살된 가운데 경찰이 모이즈 대통령 사저 인근에 모이즈가 그려진 벽화 앞에 무장한채 서 있다. 포르토프랭스/AP뉴시스
당장은 아이티 정국 혼란과 관련한 암살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피살된 모이즈 대통령은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이다. 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개헌을 통해 집권 연장을 시도한 독재자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간 대통령 임기를 두고 야권과 대치해왔던 모이즈 대통령은 지난 2월 7일 자신을 살해하고 정권을 전복하려는 음모가 있었다며 경찰 간부와 대법관 등 야권 인사 23명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당시 대통령은 암살이나 쿠데타 시도의 구체적인 정황이나 증거는 제시하지 않은 데다가 이후에도 대법관들을 강제로 축출해 국제사회 비난을 샀다. 이 과정에서 아이티 야권 인사들은 미국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모이즈 대통령이 미국의 ‘눈엣가시’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이즈 대통령에 지나치게 관대한 입장을 보인 것이 아이티 정국 불안을 키웠다는 것이다. 모이즈 대통령은 당초 2016년 취임해야 했지만, 정국혼란으로 1년 뒤에야 정식 취임했다. 그는 자신의 임기가 2022년까지라고 주장하며 대통령 권한 강화 정책을 추진했으나 야권에서는 올해 2월 법적으로 임기가 종료됐다고 반발했다.

아이티의 정국 혼란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대통령이 암살당했지만, 합법적인 후계자를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1987년 헌법 기준으로 대통령직 승계 대상은 르네 실베스트르 대법원장인데, 그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했다. 의회도 사실상 공백 상태여서 임시 대통령 선출도 기대할 수 없다. 아이티는 오는 9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인구 1100만 명의 아이티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330달러인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2010년 규모 7.0 대지진으로 30만 명 가까이 사망하고 기반시설이 파괴됐다. 2016년에 대형 허리케인 매슈까지 덮치면서 상황은 악화했고,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확산까지 겹쳤다.

아이티가 자체 힘만으로 정국 혼란을 타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국제사회 지원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페루와 베네수엘라 등 이 일대 국가들의 독재 정치로 인해 중남미가 민주적으로 퇴보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아이티의 정국 불안정은 민주주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라이언 버그 수석 연구원은 CNN에 “아이티 문제가 서반구의 수많은 과제에 파묻혀 오랫동안 미국 의회에서 잊혀져 있었으며, 미국의 무관심이 아이티의 정국 불안정을 키웠다”면서 “대통령 피살은 아이티 위기의 시작일 수 있으며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아이티의 안정을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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