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직전 암호화폐 해외로 빼돌리기도…"가급적 대형 거래소 이용"
중소형 가상화폐거래소의 대규모 파산이 현실화하면서 '먹튀' 위험이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 거래소 중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곳만 실명 인증 계좌를 확보했다. 나머지 거래소는 이른바 ‘벌집계좌’를 사용하고 있어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이들 거래소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시세와 수수료, 무료 코인 이벤트 등으로 투자자를 유인하고 있지만, 제도적 보호 장치가 없는 만큼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소형 가상화폐거래소들은 대부분 법인 명의 계좌 1개를 이용해 투자자들로부터 무통장 입금이나 계좌 이체로 송금받아 투자금을 보관한다. 칸칸이 나눠진 벌집처럼 1개의 계좌에 많은 투자자의 투자금이 모여있어 '벌집계좌'라고 한다. 투자자별 실명 계좌가 아닌 만큼 거래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현재 대형 거래소 네 곳을 제외한 국내 거래소는 상당수 벌집계좌를 쓰고 있다. 앞서 정부는 2018년 1월 거래 실명제를 도입하면서 벌집계좌를 금지하는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벌집계좌 사용 금지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무력화됐다. 이후 가상화폐거래소가 우후죽순 난립하기 시작했다.
7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벌집계좌에 보관된 고객 예치금을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A 가상화폐거래소 대표이사는 최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거래소가 벌집계좌의 돈을 회사 운영비로 쓰더라도 횡령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벌집계좌에 모인 예치금 중 법인자금과 투자자의 자금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코인제스트는 신규 가상계좌 발급이 중단되자 고객의 돈을 벌집계좌로 받았다. 이후 고객에게 에어드롭(무상지급)한 암호화폐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며 자금난에 봉착하자 벌집계좌에 보관 중인 돈을 임의로 사용했다.
법조계에서는 중소형 가상화폐거래소가 사용하는 벌집계좌가 투자자들의 피해 위험을 커지게 하는 요소라고 본다. 게다가 이번 판결이 중소형 가상화폐거래소의 먹튀를 정당화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법률사무소 황금률 박주현 변호사는 “고객이 원화를 입금하는 집금계좌에 예치된 금액을 대표이사나 실소유주가 자신의 개인 계좌 다루듯 사용하는 것은 업무상 횡령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중소형 가상화폐거래소들이 파산을 신청하기 직전 지인에게만 정보를 제공해 암호화폐를 인출하거나 해외로 빼돌리는 사례도 발생했다.
파산 절차를 진행 중인 코인빈이 법원에 파산 신청서를 접수하기 전 관련자에게 파산 신청 사실을 알려주고 암호화폐를 인출한 사실도 확인됐다. 코인빈 파산관재인은 이런 정황을 파악하고 당사자를 상대로 채권 가압류를 신청해 인용 결정을 받아냈다.
트래빗은 파산 신청 직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자금세탁 수법인 믹싱 앤 텀블링(수천 회의 거래를 일으켜 암호화폐를 섞는 방식)을 거쳐 해외 거래소 지갑으로 빼돌렸다. 경찰은 장기간 수사를 통해 대규모 암호화폐가 수백 개로 쪼개져 미국 가상화폐거래소 비트렉스로 흘러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올해 초 트래빗의 대표 A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출금 중단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파산하거나 폐업하는 행태는 중소형 가상화폐거래소들이 자주 쓰는 ‘먹튀 수법’이다. 2019년 트래빗을 비롯해 올스타빗, 뉴비트, 히트코리아, 인트비트 등의 거래소가 이런 방식으로 잇달아 문을 닫았다.
기술법 전문가인 한 변호사는 “벌집계좌로 입금받은 고객 예치금은 가상화폐거래소의 소유로, 이를 반환하지 않아도 형사상 횡령이나 배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하급심 법원이 판결”이라며 “사실상 고객 돈을 빼돌려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벌집계좌 사용 가상화폐거래소의 줄 파산은 피할 수 없어 보이는 만큼 이용자들은 투자금을 빼고 숨을 고르는 게 좋아 보인다”며 “가능하면 대형 가상화폐거래소를 이용하는게 좋을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