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김금희라는 믿음직한 세계

입력 2021-06-30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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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창비 펴냄/ 1만4000원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 시절을 통과했다는 것. 그렇게 좌절을 좌절로 얘기할 수 있고 더이상 부인하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성장이었다." <본문 중에서>

2000년대 초중반에 20대를 보낸 한 세대의 회고 서사는 김금희 소설의 인장과도 같다. 이번 소설집의 문을 여는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은 대학 진학에 거듭 실패한 삼수생 '나'와 의대에 입학했지만 적응하는 데 실패한 '장의사'가 함께 보낸 패배한 여름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이 특히 빛나는 지점은 그 시절을 회고하는 '나'의 현재에 있다. '나'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느끼는 빈곤과 무기력을 단순화하는 자신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지금의 시선으로 그 시절을 돌아보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자가 지나온 시대를 낭만화하지 않으면서 일산의 여름을 지켜내는 일을 골몰하는 이 현재의 자리에서 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새로이 쓰인다.

진실을 목도하며 성장하는 인물의 면면은 이번 소설집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나'의 이종사촌인 '초아'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명문대에 입학하며 집안에 파란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주식 투자를 할 뿐이다. 불합리한 일에 정당하게 항의할 줄 알았던 '초아'와 오랜만에 재회한 '나'는 그 시간들의 복원이 이끌어낸 변화로서, 부당하다 생각했던 일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항의하며 스스로에 대한 정당한 대접을 이끌어낸다.

작가는 과거의 상실을 그리되 그것을 미화하거나 낭만화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그 시절을 기어이 현재와 연결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유의미한 진실을 발견해낸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뛰어넘어 마지막 진실을 배우며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매번 새롭고도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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