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지병원 외래교수
요즘 ‘우월한 유전자’란 유행어가 미디어에서 종종 눈에 띈다. 나는 이 단어를 볼 때마다 매우 비과학적인 오류가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를 둔 어머니가 진료실에 찾아왔다. 수업시간에 집중을 영 못하고 산만하여 담임 선생님이 아무래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증후군, 즉 ADHD’인 것 같다고 치료를 받아 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곱게 키운 외동아들에게 그런 불경한 말을 하다니. 어머니는 선생님에 대한 원망과 혹시나 하는 걱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일단 검사를 진행한 뒤, “어머니, ADHD에 해당되는 점수가 나오긴 했는데요” 하며 최대한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꺼내자마자, 그녀는 눈물을 쏟으며 대성통곡한다. “제 아이한테 어쩌다 이런 일이….”
“어머니, 남자들이 수렵 생활을 하던 수십만 년 동안은 산과 들을 신나게 질주하던 상남자들이 마을에서 일등 신랑감이었지요. 그런데 불과 수천 년 전에 문명이 발전하면서 글을 배우고 숫자를 익혀야 되는 환경이 오자 이런 남아들에게 좀 힘들게 된 것이지요. 또, 긴긴 빙하기를 거치면서 지방 저장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이 미인이었는데, 아주아주 최근 식량이 지나치게 남아돌면서 오히려 불리하게 된 것처럼요.”
“ADHD가 병이냐 정상이냐는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가치판단의 영역입니다. 가치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이지요.”
“과학적으로 아이의 집중력을 높여 줄 수 있는 방법은 있지만, 그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는 형이상학적 영역이고 부모의 교육 철학에 달려 있습니다.”
“우월한 유전자도 열등한 유전자도 없습니다. 단지 그 당시의 환경에 유리한 유전자는 있겠지요.”
내가 녹음기처럼 반복해서 환자들에게 들려주는 이 말은, 그들을 피상적으로 위로해 주기 위한 현실 도피적인 수사가 아니다. 이것은 과학적 진리다.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