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전 에스케이 사장
한·일관계가 격랑에 휩싸였던 1995년 초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종현 회장은 도요다 쇼이치로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에게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두 가지 제안을 했다. 당시 전경련의 도쿄 주재원이었던 필자도 모르게 은밀히 제안된 내용은 두 나라 재계가 공동사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즉 공동사업을 통해 두 나라 국민이 친해지면 정치적 갈등이 생겨도 우호관계에 금이 가지는 못 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최 회장은 우선 10년짜리 사업으로 2002년 FIFA월드컵을 한·일 두 나라가 공동으로 주최하자고 했다. 마침 도요다 회장이 일본 측 월드컵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었고 최 회장과는 격의 없이 무슨 일이든 협의할 수 있는 사이였기에 오해란 있을 수 없었다. 또 하나는 30년짜리였다. 한·일 간에 해저터널을 놓자는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도버해협을 뚫음으로써 우호관계의 초석을 다졌듯 한·일 두 나라도 이 사례를 본받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어쨌든 최종현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서 제안한 두 가지 중 하나는 성사가 됐다. 이듬해인 1996년 두 나라는 2002년 FIFA 월드컵을 공동으로 유치했다. 10년짜리 공동사업을 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순풍에 돛 단 듯이 호전됐다. 문화가 교류되며 생각이 공유되더니 마침에 두 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청사진을 발표했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이라는 공동선언을 통해 불행했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로 눈을 돌리자고 했다. 이때의 한·일관계는 지금까지의 어느 시점보다 좋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종현 회장이 단순히 SK의 회장이었으면 이런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경제단체장으로서 재계 전체의 무게를 실어 다리를 놓고 정치 지도자가 마무리를 하는 방식이었고 그 혜택은 두 나라 국민들이 누릴 수 있었다.
당시 한국 측 월드컵 유치위원장은 무역협회 구평회 회장이었다. 그런데 구평회 위원장이 취임하고 보니 유치위원회에는 30억 원의 예산 중 실제는 5억 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기금을 300억 원까지 늘려 준 것이 최종현 전경련 회장이었다고 최 회장 사후 구 회장은 회고했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국민적 환호는 경제단체장들의 팀워크로 기획되고 만들어진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월드컵 유치를 무역협회와 분업체제로 성사시킨 최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와는 지방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추진했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지방 상공회의소 회원들과의 간담을 통해 지역 경제 현안을 직접 청취하고 특성화된 거점 산업의 육성 방안을 제시했다.중소기업중앙회에는 종합연수원, 경제연구소와 중소기업 전용 금융회사의 설립을 지원하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 모든 테마를 민간 경제계가 주도하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큰 틀로 묶어 추진함으로써 경제단체 수장으로서의 지도력을 발휘했다.
최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경제5단체의 장이 모두 민간 기업인이었다. 재계의 세대교체를 타고 올해 새로 선임된 경제5단체장도 모두 민간 기업인들이다. 15년 만에 기업인 회장 시대가 열린 것이다. 특히 대한상의 최태원 회장과 무역협회 구자열 회장은 같은 시기에 경제단체장을 맡아 재계의 황금시대를 펼쳤던 선대의 직을 잇는 인연까지 겹치게 됐다.
돌이켜보면 역대 경제단체장들은 고도의 팀워크를 발휘해 경제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기업인으로만 새로 구성된 경제단체장들에게 코로나 위기 종식과 한국경제 활력 회복에 선도적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민간 경제계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