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통사고와 불완전판매, 같거나 다르거나

입력 2021-03-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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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NH농협은행 신설동지점장, 금감원 인증 금융교육 전문강사

교통사고 발생 시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과실 주체와 정도에 따라 피해자와 보험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실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금융상품 불완전판매는 교통사고와 같다. 금융소비자에게 손실이 발생한 경우 금융회사의 과실, 다시말해 불완전판매 인정비율에 따라 책임범위가 달라진다. 손해액에 대한 입증책임이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점도 같다.

2019년에 발생한 파생결합펀드(DLF) 피해의 경우 분쟁조정 대상 중 금융감독원이 정한 최고 배상비율은 손실액의 80%였다. 투자 경험이 없고 난청까지 있는 치매 어르신에게 원금손실 위험이 있는 금융상품을 판매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해당 금융회사에 80%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설명의무 이행 정도다. 판례는 금융소비자에게 투자상품에 관한 자세한 자료 등을 제시하면서 투자상품의 중요한 사항에 관련된 개념을 평이한 용어로 설명했다면 금융회사가 그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소비자가 금융회사의 설명의무 소홀로 손해가 발생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래서 25일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설명의무 이행에 대한 입증책임을 금융회사로 전환하고 있다. 교통사고와 불완전판매가 달라지는 부분이다. 민법상 손해배상소송에 있어서 손해액에 대한 입증책임은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부담하는 것이 일반원칙이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보호법 제44조 제2항에서는 금융회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하여 일반금융소비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고 금융회사가 고의 및 과실이 없음을 입증한 경우에 면책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복잡하고 고도화된 금융거래로 인한 손해액을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금융소비자가 입증하게 하는 것은 손해배상제도를 사실상 무의미하게 할 수 있어, 손해액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하여 일반금융소비자의 소송부담을 경감하고자 하는 것이 입법취지다. 입증책임 전환으로 금융회사의 법률 리스크는 커졌다. 금융회사들이 판매 프로세스와 상품 내용을 정비하고 직원교육을 하는 이유다. 은행의 경우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에 설명의무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펀드 등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비예금상품을 판매하는 경우 별도의 설명서를 작성해야 한다. 입증책임 전환에 대비해 만65세 이상 고령자와 부적합 체결자에 대해서는 투자성향 진단 과정과 상품판매 과정을 모두 녹취해야 한다. 판매직원의 대필이나 중요한 내용에 대한 고객의 자필서명 누락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완전판매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전자창구(PPR)와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등 디지털 기술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금융상품 불완전판매를 제도개선과 금융회사 직원들의 설명의무 이행만으로는 온전히 막을 수 없다. 금융소비자들도 동참해야 한다. 금융소비자는 안내장 등에 표시된 중요한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 보고 원금손실 여부를 반드시 확인한 후 가입해야 한다. 설명의무에 대한 입증책임이 금융회사로 전환되지만 투자손실은 금융소비자가 부담한다는 자기책임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금융회사 직원의 설명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금융소비자 스스로 자신의 판단과 책임하에 금융상품에 가입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금융회사 임직원들도 불완전판매를 예방하기 위해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교통사고를 막으려면 법규 준수는 기본이고 상대방의 실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운전을 해야 한다. 교통사고와 불완전판매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사전예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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