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中企에 재하청 늘려…디자인 서비스 과제 많아지며 중소 팹리스 업황도 개선
삼성전자가 밀려드는 시스템 반도체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중소 협력사와 외주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전방산업의 수요 증가로 시스템 반도체도 품귀 현상을 빚고 있자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강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자 국내 중소기업에 맡기던 시스템 반도체 설계용역 과제를 늘리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세이프(SAFE·삼성 파운드리 에코시스템) 파트너로 등록된 업체들을 대상으로 반도체 설계 일부분을 맡겨오고 있다. 그동안 중소업체들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계 과제에 함께 참여하고, 삼성전자가 이를 직접 양산해 왔다.
최근 삼성전자는 제한된 설계 인력으로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버거워지자, 메인 제품을 제외한 기술 난도가 비교적 쉽고 범용인 제품을 중심으로 외부에 설계를 맡기는 물량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협력사들에 과제만 주던 것에서 나아가 협력사의 자체적인 영업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시작했다”라며 “반도체 시장에서 디자인 서비스 과제가 많아지면서 업황도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협력사 대부분은 자체 보유한 반도체 설계 인력의 50~60% 정도를 삼성전자 과제 처리로 돌리며 캐시플로우(현금흐름)를 만들어내고, 나머지 인력으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턴키(Turn key, 설계·시공 일괄 입찰)솔루션에 도전한다. 최근 반도체가 초호황 국면에 진입하자 삼성전자가 협력사에 턴키솔루션 확대를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협력사들은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 과제 수주 시기에 따라 2~3개월 공백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 공백기를 없애기 위해 중소 시스템 반도체 기업들끼리 연합체를 구성해 물량을 직접 수주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협력사 장려 움직임은 반도체 부족 장기화 우려에 따른 전략적인 조치로 보인다. 반도체 수급난은 자동차에 이어 스마트폰과 TV 등 전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의 두뇌인 AP(모바일 애플리케이션), CIS(이미지센서), DDI(디스플레이 구동칩) 등 시스템 반도체 전반에서 수요가 급증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발생한 한파로 삼성전자를 비롯해 글로벌 반도체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수급난이 더 심화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미국 텍사스에 있는 삼성전자 오스틴 반도체공장이 멈춰선 상황과 관련해 “이번 한파로 글로벌 12인치 공장 생산물량의 약 1~2%에 해당하는 손실을 봤다”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맞서 주도권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더욱 강화된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필요하다”며 “생산확대와 증설에 큰돈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짧은 시간 안에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중소 협력사들과의 반도체 생태계가 더욱 견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2019년에 발표하고 국내 중소 반도체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위탁생산 물량 기준도 완화해, 국내 중소 팹리스업체의 소량제품 생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국내 중소 팹리스 업체의 개발 활동에 필수적인 MPW(Multi-Project Wafer)프로그램을 공정당 년 2~3회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또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체와의 외주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1월 첫 경영 행보로 평택 2공장의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석한 후, 협력회사 대표들과 국내 반도체 생태계 육성 및 상호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새해를 맞아 새로운 삼성으로 도약하자. 함께 하면 미래를 활짝 열 수 있다. 삼성전자와 협력회사, 학계, 연구기관이 협력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신화를 만들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