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혁신 혹은 욕망…넷플릭스 영화 '승리호'를 통해 본 우주 산업

입력 2021-02-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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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리호' 포스터 (출처=넷플릭스)

회색 먼지가 자욱한 황폐해진 지구. 이제 인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주로 향한다. 하지만 우주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우주 시민권을 구매할 수 있는 5%의 특권층 뿐. 시민권이 없다면 평생 2등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 마땅한 직업 없이 위험천만한 우주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 일을 하면서.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SPACE SWEEPERS, 2020)다.

영화 승리호는 심각한 지구 오염으로 우주가 대안으로 떠오른 2092년을 배경으로 한다. 로봇이 인간처럼 말을 하고, 실시간 통역기가 전 세계 언어를 해석해주는 신기한 세상이다. 다만 세상은 변했어도 빈부격차는 여전하다.

▲화려한 출연진과 240억 제작비로 주목을 받았던 '승리호'는 공개 이틀만에 유럽, 아시아 등 28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출처=넷플릭스)

과거 우주 해적단을 이끌었던 리더 장 선장(김태리 분), 갱단 두목 출신의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분), 작살로 우주 쓰레기를 줍는 로봇 업동이(유해진 분)와 아픈 과거를 지닌 조종사 태호(송중기 분)까지. 우주선 승리호 선원들은 모두 5% 특권층에 들지 못하고 밀려난, 우주 청소부들이다. '선수 입장'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는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지만 이상하게 일을 할수록 더 가난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승리호 선원들은 대량 살상 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다. 대량 살상 무기라고 하기에는 인간 아이처럼 깜찍하고 귀엽기만 한 도로시. 이때, 정체 모를 누군가가 '도로시를 건네면 2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던 이들은 돈방석에 앉기 위해 위험한 거래에 뛰어들고, 그 과정에서 화성 식민지 개발을 둘러싼 우주 기업 UTS의 음모를 알게 된다. 과연 이들은 거대 우주 기업 UTS의 음모를 막고,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승리호는 우주 공간을 실감나게 그리며 CG면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전형적인 한국 영화 공식을 답습한 서사는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출처=넷플릭스)

과거 국가 위주로 이뤄졌던 우주 산업은 이제 민간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과학 기술 발달과 함께 풍부한 자본력을 등에 업은 민간 기업들이 우주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2020년 세계 우주 산업의 규모는 500조 원 정도인데, 이중 민간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 과거 '기술 연구'에 치중했던 우주 패러다임 역시 민간 관광 및 로켓 재활용 등 '효율과 사업성'으로 변하고 있다.

민간 우주 산업을 이끄는 대표적인 기업은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인류의 화성 이주를 목표로 세운 '스페이스X'다. 스페이스X는 2008년 민간 기업 최초로 액체연료 로켓 ‘팰컨 1(Falcon 1)'을 지구 궤도로 쏘아 올렸으며, 2016년 4월에는 로켓을 해상에서 회수하면서 로켓 재활용 시대를 열었다. 이달 10일에는 소속 승무원들이 우주에서 85일을 보내 미국 역사상 최장 우주 체류 기록을 경신했다.

아마존닷컴 CEO 제프 베이조스가 2000년에 세운 '블루오리진' 역시 우주 산업계에서 눈에 띄는 민간 기업이다. 화성 개발을 목표로 하는 스페이스X와 달리 블루오리진은 민간 우주 관광과 달 탐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직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지 못해 스페이스X보다 기술력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현재 베이조스는 공격적으로 블루오리진에 투자하고 있다. 그는 2019년부터 매년 아마존 주식 3조 원어치를 팔아 그 돈으로 블루오리진에 투자했다. 지난 3일 아마존 CEO 사임 의사를 밝힌 베이조스는 앞으로 블루오리진 사업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 속 민간 우주 기업 UTS 창업자 제임스 설리반은 인공 행성 UTS에 이어 화성을 제2의 지구로 만들고자 한다. (출처=넷플릭스)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적극적으로 우주 산업에 나서는 기업은 한화그룹이다. 한화는 지난달 13일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원 출신들이 창업한 우주 항공 기업 '써트렉아이'의 지분을 인수했다. 써트렉아이는 상용 위성을 개발하는 회사로, 소형 위성 제작 분야에서 에어버스와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10월 발사될 누리호의 로켓 엔진을 제작하는 등 항공 우주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우주 산업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더딘 편이다. 그 이유로 기초 과학에 대한 지원과 인력 부족이 꼽힌다. 우리는 올해 10월 누리호와 내년 8월 달 탐사선 ‘KPLO’를 발사하는 반면, 중동 아랍에미리트(UAE)는 13일 자국 탐사 위성을 화성 궤도에 진입시켰다. UAE는 10년 전만 해도 써트렉아이의 도움을 받아 소형 위성을 쐈던 나라였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투자로 미국, 러시아, 유럽, 인도에 이은 세계 다섯 번째 화성 궤도 진입 국가가 됐다.

▲영화 승리호는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통해, 희망은 미지의 우주 대신 '지구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출처=넷플릭스)

모두가 앞다투어 우주 개발에 나설 때 우주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다. 그는 16일 팟캐스트 '스웨이'와의 인터뷰에서 “우주여행보다는 차라리 백신이나 기후변화에 돈을 쓰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화성 이주는 기후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없다"며 "1000달러면 홍역 백신을 사서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이츠가 말한 대로 1000달러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대신 홍역 백신을 사는 것이 더 숭고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인류가 미지의 세계로 발돋움하는 것 역시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어디로, 어떻게 발을 내딛을지가 문제다.

영화 '승리호' 속 UTS 같은 민간 기업이 특정 계층과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우주를 개발한다면, 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곧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우주를 향한 도전은 우리 모두와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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