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바이든 취임사의 화두는 통합이었다. 평범한 언어였지만 울림은 컸다. 연설 내내 통합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미국을 하나로 묶고, 사람들을 단결시키며, 나라를 화합시키는 데 영혼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반대가 분열로 가선 안 된다. 나를 지지하지 않은 이들을 포함해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통합을 호소했다.
바이든이 첫 번째로 지명한 내각이 그 실천이다. 그는 인종과 이민자의 다양성을 고려한 ‘미국다운 내각’을 꾸리겠다고 했었다. 부통령과 15개 부처 장관, 백악관 비서실장 등 각료급 26명 가운데, 유색인종이 절반인 13명이고 여성은 12명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통합과 포용의 상징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주자로 바이든의 발목을 잡았었지만 최초의 여성·흑인 부통령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을 지낸 첫 여성 재무장관 재닛 옐런, 최초의 흑인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과 원주민 출신 내무장관 뎁 할렌드, 성소수자인 교통장관 피트 부티지지와 함께 대만 출신 이민 2세인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 국가정보부(DNI)의 첫 여성 수장인 에이브릴 헤인즈 등이 포진했다. ‘최초들의 내각’(cabinet of firsts)으로 불리는 이유다.
바이든은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1861∼1865년 재임)을 다시 소환했다. 링컨이 1863년 1월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하면서 “내 영혼이 이 안에 들어 있다”고 했던 말을 빌려, 미국의 통합에 영혼을 바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링컨은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자 통합의 표상(表象)이다. 링컨의 위대성은 포용의 리더십이었다. 유난히 정적이 많았던 그의 용인술은 이후 존 F 케네디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도 역할모델로 삼아 벤치마킹했다. 공화당의 링컨은 자신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적대적 혐오감과 경멸적 언사로 일관했던 민주당 출신 에드윈 스탠튼을 가장 중요한 전쟁장관으로 끌어들였다. 스탠튼은 남북전쟁의 승리를 이끌고, 암살당한 링컨의 임종을 지킨 마지막 동반자였다. 링컨은 또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전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윌리엄 슈어드에 국무장관을 맡겼다. 슈어드는 처음 링컨을 대놓고 무시했으나 이후 최대 조력자가 되고, 미국의 보물인 알래스카를 1867년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사들여 영토에 편입한 주역으로 미국 역사상 최고의 국무장관으로 남는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가 새삼스럽다. 대선에서 41.1%의 득표율을 얻은 문 대통령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선거의 승자도 패자도 없으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저를 지지하지 않은 한 분 한 분을 섬기겠다”고 했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고,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고도 강조했다.
4년이 지나는 지금, 듣기 그럴듯했던 수사(修辭)였을 뿐 헛말이 된 그 약속을 다시 되짚을 가치는 조금도 없다. 이 나라 현실은 통합과 공존, 소통과 갈수록 멀어지고, 대립과 분열, 단절의 상처가 어느 때보다 커지면서 곪아들고 있다. 정권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내 편과 네 편을 갈라 적대감과 증오만 부추기는 분열의 정치를 권력 유지의 동력으로 삼는다. 과거 공들여 쌓은 성취마저 모두 적폐로 부정하고, 자신들의 뜻과 다른 사실과 반대 목소리는 가짜뉴스이자 선동으로 몰아붙인다. 협력해야 할 상대는 사생결단으로 제거해야 할 적(敵)일 뿐이다.
‘인재의 삼고초려’라고 했던가? 문재인 정권 장관들 이제 모두 바뀐 사실상 마지막 내각인데 그런 인물 누구 있기는 한가? 과거 정권들이 흉내라도 내려 했던 탕평(蕩平)은 애초 없었고, 끝까지 오만과 불통의 내 맘대로인 ‘코드 인사’ ‘회전문 인사’라는 조롱만 넘친다. 결함투성이어도 감투만 씌워 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님 지키기’에 몸바치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협량(狹量)에 의지 자체가 없는 말장난의 통합이었다. 분열의 골만 깊어지는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