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맘 이모(41)씨는 최근 초등학교 5학년인 딸에게 50만 원을 주고 주식투자를 시켰다. 신문 경제면을 틈나는 대로 읽게 하는 한편, 증권사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교육을 한 뒤 스마트폰으로 직접 주식투자를 하게 한 것. 이 씨는 “아파트는 못 물려 주지만 주식을 통해 흙수저에서는 벗어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교복을 입은 미성년자 주린이(주식+어린이)가 늘고 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5개 증권사(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키움증권·대신증권)의 2020년 미성년 신규 주식 계좌 개설 건수는 26만5841개로 전년(2만6451개)보다 10배 가까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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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에서 8월까지 미성년 주식 계좌의 예수금 총액은 2751억 원 증가했다. 매달 평균 344억 원씩 늘어난 셈인데, 작년 한 해 늘어난 예수금 총액(370억 원)에 맞먹는다. 부모나 조부모에게 주식을 증여받은 경우도 있지만, 이 통계엔 직접 투자에 나선 고등학생도 포함됐다. 미성년자라도 증빙 서류를 갖춰 보호자와 함께 금융기관을 방문하면 주식 계좌를 만들 수 있다.
‘걱정 마. 엄마가 나중에 다 돌려줄 거야!’ 엄마 배신(?)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주식 관련 인터넷 카페에선 “주식 시작하려는 학생인데 책이나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달라”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주식 얘기를 꺼낸다. 발레학원을 운영하는 김 모 씨(32세)는 “선생님, 저는 돈이 생기면 삼성전자 주식을 살 거예요” 라는 초등학교 1학년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종목까지 콕 짚어 얘기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최근에 부모와 함께 지점을 방문해 주식 계좌를 개설한 학생들이 예년보다 많다”면서 “재테크보다는 경제 교육의 목적으로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하는 미성년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원비 내주지 말고 주식을 사줘라.” 주식시장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발언은 진리가 됐다.
초등학생 자녀에게 주식 계좌를 만들어줬다는 직장인 신 모 씨(45세)는 “주식거래에 매몰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저축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우량한 주식을 사 모으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면서 “주식의 거래보다는 경제관념을 알려주기 위해서 허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미성년의 주식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면서 “여러 강연에서 1살 때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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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거래소는 초중고 주식 교육을 위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쉽게 투자 상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모의증권투자게임, 주식 게임 등 온라인 콘텐츠도 만들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지금은 코로나19로 잠시 휴관하고 있지만, 초등학생 4학년 이상을 위한 증권교실, 증권세미나 등 올바른 투자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