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맞은 건설업계 新 풍속도
건설업계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규모 관급 도급사업에 대형 건설사들이 체면도 안 차리고(?) 몰려드는가 하면 아파트를 전문으로 지어오던 주택전문업체들이 소규모 건축물 도급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장기 불황이 만들어낸, 건설업계의 新풍속도다.
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건설사들이 일감 확보를 위해 그간 관심을 두지 않던 소규모 사업에도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불황으로 일감 자체가 크게 줄어든만큼 일감이라면 가리지 않고 수주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주택 전문 중견 건설업체들의 노력이 눈에 띤다. 이들은 시공능력평가순위 40~50위권의,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의 회사지만 사업 분야를 주택과 건축에 한정하고 있다.
주택 사업분야만 보면 업계 10~15위권에 해당할 정도로 전문화된 이들이지만 계속되고 있는 주택시장 불황은 생존을 위협할 지경이다.
한 주택전문 중견건설업체 관계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업역 확대와 변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그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업도 조금씩 눈을 돌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들 주택전문 건설업체들이 눈을 돌린 분야는 바로 주공아파트 도급사업이다. 매년 10만 가구의 보금자리 주택을 지어야 하는 대한주택공사의 주택사업 수주는 이들 업체에게 있어 더없이 좋은 터전인 셈이다.
이에 따라 자체 주택 브랜드를 통해 아파트사업을 활발하게 펼쳐온 월드건설, 우림건설, 풍림산업, TEC건설 등이 최근 주공의 공동주택 건설사업에 적극 입찰하고 있다.
주공 관계자는 "주공 아파트 도급사업은 한신공영, 금광기업, 삼능건설 등 주로 업계 100~150위권 업체들의 활약무대였지만 최근 들어 자체 아파트 브랜드를 론칭하고 활발하게 사업을 추진해오던 중견 주택건설업체들의 참여가 대폭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 업체들은 아직은 사업을 수주하지는 못하고 있다. 최저가 낙찰제를 실시하는 관급 공사 수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사업에서 적지 않은 실적을 쌓아올렸던 업체들이었던 만큼 향후 수주실적은 늘어날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20위권 이내 대형건설사들의 경우는 아직 개별 아파트 시공사업 수주에는 나서지 않고 있지만 주공이 발주하는 택지지구 조성사업에는 이전보다 적극적이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대림산업, SK건설 등 업계 5위권 내 대형업체들은 전부터 택지조성사업 등 굵직한 사업에 입찰해 왔다.
하지만 최저가 낙찰제가 실시되자 이들 업체들은 굳이 '이익 없는 사업'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입찰은 해도 낙찰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주공 관계자는 "대형업체들도 택지조성사업 등 규모가 큰 사업에는 계속 참여했지만 입찰가격을 높게 써내 낙찰이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중요 사업이 있을 때 입찰은 간혹 하는 편"이라며 "하지만 최저가 낙찰제로 운용되는만큼 중소형 건설사들을 위해서라도 굳이 가격을 낮게 써 응찰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업체들의 경우 한국토지공사가 발주하는 대형 택지개발지구 조성사업의 경우는 간간히 참여한다. 반면 10만평 이하 규모인 주공이 발주하는 소형 택지지구 조성사업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들 대형업체들도 최근 소형 택지지구를 대하는 자세가 틀려졌다. 사업 수주를 위해 입찰금액을 낮춰내는 등 적극 참여하고 있다. 즉 그동안은 입찰 참가에만 의의를 뒀으나 최근 들어 낙찰에도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주공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주공이 발주한 인천가정택지개발사업조성공사, 인천서창2택지개발사업조성공사 1, 2공구 등 세 개 사업에 대해 이들 5위권 내 대형건설사들 모두가 입찰했다.
이중 SK건설은 인천서창2지구 2공구 조성사업 입찰에서 72.2%의 예가대비 투찰율을 기록하며 4번째로 낮은 가격을 써냈으며 1공구 조성사업 입찰에서도 7번째로 낮은 가격으로 응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공에 따르면 입찰 가격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 부실공사가 우려가 있는 만큼 최저가 낙찰제라도 최저가격을 써낸 업체가 낙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따라서 통상 3~7위권 업체가 낙찰되는 전례를 볼 때 SK건설이 이번 주공 발주 사업을 수주할 확률이 적지 않다.
공공공사 뿐 아니라 아파트형 공장, 일반 빌딩 사업 등 각종 건축 영역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그동안은 이런 사업에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나서지 않았지만 일감을 찾아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호기'는 부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분야에서도 주택전문 업체들의 도약이 두드러진다. 대형건설사와 브랜드 싸움을 벌일 정도로 고급 아파트를 짓던 건축기술이 있는만큼 적당히 낮춘 가격을 통해 수주에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우림건설과 월드건설은 내년 사업에서 아파트형 공장의 비중이 높아졌다. 아파트와는 달리 규모가 작아 자금 압박도 심하지 않고 무엇보다 미분양에 따른 문제도 적기 때문이다.
한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중견 건설사들이 아파트형 공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내년 이후에는 아파트형 공장도 공급과잉 상태에 빠질지 모를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또 그룹 계열사 공사가 아니면 일반 빌딩공사에는 나서지 않던 대형 건설사들도 소규모 오피스 빌딩공사에 적극 진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은 10층 이하 소규모 오피스빌딩의 경우 업계 100위권 이하 업체들의 몫이었지만 최근 들어 대형업체들이 수주에 나서는 등 업역이 흔들리는 양상"이라며 "본격적인 낙찰과 공사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중대형 건설사들의 수주 입찰 횟수가 늘어나고 있어 조만간 대형사들의 낙찰 독식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불황인 만큼 대형건설사들이 가리지 않고 일감 찾기에 나서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같은 업역 파괴는 소형 건설사들과 전문 건설사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